"불법 낙태 시술로 아프리카·남아시아 여성 피해 예상"
(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낙태를 돕는 국제 비정부기구(NGO)에 대한 자금 지원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 여성들의 피해가 우려된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여러 사업 분야 중 낙태 상담 등이 포함됐다는 이유만으로 미국 정부의 원조가 끊기면 해당 단체가 지원하는 다른 보건 영역까지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다.
미국 정부는 현재도 낙태 지원에 관한 예산을 지원하지 않는다. 따라서 국제 보건 관련 단체들은 여러 사업 분야 중 낙태 지원은 다른 예산으로 통용하고, 나머지 사업 분야만 미 정부 예산을 받아 운영한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예산 사용처와 관계없이 낙태와 관련이 있는 기구에 대해 예산을 끊어버리면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테스트나 신생아 치료, 응급 치료 같은 미 정부 예산으로 운영하던 다른 의료서비스까지 중단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에도 가족계획연맹(PP) 등 일부 NGO는 낙태 지원을 계속하겠다고 밝혔으나 상당수 기구는 낙태 지원을 중단할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나 아시아 남부 지역 여성 등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
국제가족계획연맹(IPPF)의 한 관계자는 "안전하지 못한 낙태로 여성들이 목숨을 잃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케냐의 보건 전문가들도 당장 우려를 표했다. 의사가 '응급 치료를 위해 필요하다'고 진단하지 않는 한 낙태가 불법인 케냐에선 배터리 수은을 마시거나 주술사를 고용해 배 위에서 뛰도록 하는 등 잘못된 낙태 시술이 횡행한다.
따라서 이들이 유일하게 기댈 수 있던 민간 기구마저 등을 돌리면 안전한 낙태 시술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한해 케냐에서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8천명인데 이 가운데 5분의 1이 불법 낙태 시술 때문으로 알려졌다.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선 내전 등으로 성폭행 피해로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되는 여성도 있다.
케냐 나이로비에 있는 아프리카인구보건리서치센터(APHRC)의 한 연구원은 "이제 일부 여성은 도움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며 "거대한 재앙에 맞닥뜨리게 됐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는 낙태 관련 단체 지원금지 정책은 이전에 조지 W. 부시 대통령하에서도 도입됐다. 2011년 세계보건기구(WHO)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이 정책은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지역 국가들의 낙태율 증가만 야기했다.
낙태 지원 단체에 대한 예산이 중단되자 이들 단체가 하던 피임기구 보급도 줄어들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을 환영하는 목소리도 있다.
전국생명권위원회의 캐럴 토비아스 위원장은 "개발도상국에서의 태아 살해에 국민 세금을 쓰지 못하도록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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