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대선 전쟁'..."숙원사업, 후보 공약에 넣어라"

입력 2017-01-29 10:00   수정 2017-01-29 11:46

지자체 '대선 전쟁'..."숙원사업, 후보 공약에 넣어라"

"정부 지원받을 절호의 기회"…공약 반영 위해 안간힘

(전국종합=연합뉴스) 변우열 기자 = 누적 관광객 1천만 명 달성을 눈앞에 둔 청주시 문의면의 옛 대통령 별장 청남대는 2003년 4월 일반에 개방되기 전까지 원성의 대상이었다.

대청호 변에 청남대가 들어서면서 엄격한 통제가 이뤄져 이 일대 주민은 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받는 등 큰 불편을 겪었다. 대통령 방문 때는 경찰이 1주일 전부터 마을 곳곳을 샅샅이 수색할 정도로 살벌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16대 대선 공약으로 청남대 민간 개방을 공약했고, 취임한 뒤 관리권을 충북도로 넘기면서 청남대는 국민 품으로 돌아와 충북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거듭날 수 있었다.

지난 23일 청주 오송 첨단의료복합단지 내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에 착공한 사이언스 비즈(SB·Science-Biz)플라자는 260억원의 국비가 투자되는 국책사업이다. 이 사업은 18대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이 충북지역 공약으로 과학비즈니스벨트를 활성화하겠다고 약속하면서 탄력을 받아 실현될 수 있었다.




재정 한계 때문에 중앙 정부의 대규모 지원에 목을 매야 하는 자치단체들이 지역 숙원사업을 유력 대선 주자들의 공약에 반영하기 위해 사활을 거는 이유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자치단체 입장에서 보면 대선은 지역 현안에 대한 중앙 정부 지원을 끌어낼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다.

한 표가 아쉬운 후보들을 설득해 대선 공약에 지역 숙원사업을 집어넣으면 새 정부 출범과 함께 확실한 사업 추진 동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탄핵 정국 속에 19대 대선 시계가 빨라지는 분위기가 되면서 지역 현안을 대선 공약에 반영하려는 자치단체들의 행보도 빨라졌다.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헌재 구성에 더는 큰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늦어도 3월 13일 전까지 최종 결정이 선고돼야 한다"고 밝히면서 헌재의 결정에 따라서는 '벚꽃 대선'을 치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자치단체들은 유력 대선 후보와 주요 정당에 대선 공약으로 요구할 지역 숙원사업이나 현안을 챙기기 위해 더욱 분주해졌다.

충북도는 일선 시·군 의견을 수렴해 이미 50여 건의 '대선 공약 리스트'를 마련해 지난 23일 '싱크탱크'인 충북연구원에 사업 타당성 검토를 의뢰했다.

다음 달 1일 도정 정책자문단 위원회를 열어 10여 건으로 추린 뒤 각 정당과 유력 대선 주자들에게 전달하고 지역 출신 국회의원을 통해 각 당과 후보 캠프를 접촉, 대선 공약으로 채택되도록 설득한다는 구상이다.

대전시는 지난 20일 권선택 시장, 박재묵 시민행복위원장, 박희원 대전 상공회의소 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행복 나눔 정책 라운드 테이블'을 개최해 시가 마련한 대선 공약 과제를 설명하고 아이디어를 모았다.

대전시는 제4차 산업혁명 특별시 조성, 글로벌 분권 센터 설립, 대전권 순환교통망 구축 등 21건의 과제를 대선 공약으로 발굴했다.

권 시장과 이시종 충북지사, 안희정 충남지사, 이춘희 세종시장 등 충청권 시도지사들은 공조체제도 구축했다.

이들은 지난 24일 대전시청에서 만나 충청권 현안 사업들을 대선 후보들이 공약에 반영할 것을 요구하는 공동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들 시·도는 각각 10개의 사업을 뽑아 40개의 공동공약안을 마련했다.




전남도와 광주전남연구원도 지난 18일 19대 대선 지역 공약 발굴 연구보고회를 열었다. 애초 검토한 15개 과제를 놓고 도, 연구원, 정책자문위원회 등이 협의해 핵심 과제 17건, 현안 과제 41건을 간추렸다.

전남도는 연구결과를 토대로 대선 공약 건의안을 완성할 예정이다.

광주시도 자동차·에너지·문화 등 3대 먹거리산업 육성, 민주인권평화도시 조성 등에 초점을 맞춰 46개 과제를 후보군에 올려놓고 대선 공약 건의 대상으로 검토하고 있다.

지역 정치권도 대선에서 민심을 얻기 위해 자치단체의 요구에 힘을 보태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전남도당은 지난 16일 전남도와 민생현안 당정회의를 열어 권역별 주요 정책을 당 대선 공약에 반영하고 협조를 강화하기로 했다.

이낙연 전남지사도 이 자리에 참석해 당 차원의 협조를 요청했다.

민주당 경남 거제위원회는 지역 현안의 대선 공약 채택을 선제로 제시하고 나섰다.

거제위원회는 지난 9일 기자회견을 열어 "유신독재의 잔재인 저도는 거제시에 반환돼야 하고, 민주당 대통령 후보 공약으로 채택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한 자치단체의 관계자는 "대선은 지역 현안을 중앙정부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며 "자치단체마다 국회의원 등 정치권 인사까지 동원해 유력 후보의 공약에 지역 숙원사업을 넣기 위해 보이지 않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bwy@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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