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다리 절단 아픔 딛고 한국 노르딕스키 간판으로 성장
평창 2관왕 정조준…동계패럴림픽 한국 첫 金 수확 관심
(서울=연합뉴스) 이동칠 기자 = "2018년 평창 동계장애인올림픽에서 다관왕에 올라 개최국의 자존심도 살리고, 저를 위해 희생한 부모님에게 금메달을 바치고 싶습니다."
다부진 체격의 장애인 노르딕스키 '간판' 신의현(37ㆍ창성건설)은 26일 경기도 이천훈련에서 열린 '2017년 국가대표 훈련 개시식'에서 남자 선수 대표로 선서했다.
신의현이 동ㆍ하계 종목을 통틀어 장애인 국가대표 선수단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신의현은 1년 앞으로 다가온 평창 패럴림픽의 유력한 금메달 기대주다.
한국은 역대 동계 패럴림픽에서 단 1개의 금메달도 따지 못했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대회 때 알파인스키 한상민의 은메달과 2010년 밴쿠버 대회 때 컬링 은메달이 전부다. 2006년 토리노 대회와 2014년 소치 대회에서는 각각 '노메달'에 그쳤다.
이 때문에 동계 패럴림픽 출전 사상 한국의 첫 금빛 승전보 중책을 짊어진 신의현은 어깨가 무겁다.
신의현은 무궁무궁한 잠재력을 가진 선수라는 점이 큰 기대를 받는 이유다.
그가 노르딕스키 전문선수로 본격 활동한 건 고작 1년 5개월에 불과하다.
2015년 8월 창성건설이 노르딕스키 실업팀을 만들면서 창단 멤버로 합류했다. 겨울 스포츠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훨체어농구와 슬레지하키 등 장애인스포츠 하계 종목으로 강한 체력과 순발력을 길렀기 때문에 낙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는 이후 노르딕스키 좌식 부문에서 기량이 일취월장했다.
'스키의 마라톤'으로 불리는 노르딕스키에서는 체력과 지구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타고 난 파워를 자랑하는 신의현은 무릎 아래가 절단됐지만, 허벅지 부위를 의자에 줄로 단단히 매고 스키 두 개가 달린 썰매를 강한 어깨를 이용해 타기 때문에 다른 선수들과 경쟁에서 앞설 수 있었다.
신의현은 고된 훈련를 거쳐 작년 2월 평창 장애인 동계체전 출전했고, 크로스컨트리스키 2.5㎞ 프리와 5㎞ 클래식, 바이애슬론 스프린트 3㎞ 부문에서 우승하며 대회 3관왕에 올라 대회 최우수선수(MVP)까지 거머쥐었다.
그는 국제무대에서도 자신의 실력을 입증했다.
작년 12월 핀란드 부오카티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크로스컨트리 15㎞ 부문에서 은메달을 차지하며 이름을 알렸다.
이어 이달 중순 우크라이나 리비프에서 열린 '2017 리비프 파라노르딕스키 월드컵'에서는 크로스컨트리 5㎞와 15㎞ 부문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하며 대회 2관왕에 올랐다. 노르딕스키 월드컵 금메달은 비장애인을 통틀어서도 신의현이 처음 일궈낸 쾌거다.
'스키 불모지'지나 다름없는 한국 출신 선수가 설상 종목에 강한 유럽 선수들과 당당히 경쟁해 최강자 자리에 올라선 것이다.
지금은 최고 영예를 누리고 있지만 그의 젊은 시절은 우울했다.
스물여섯 살의 대학생이던 2006년 2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직장까지 잡았지만, 졸업식 하루 전날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했다.
들뜬 마음에 늦은 밤까지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1.5톤 트럭을 몰고 귀가하다가 도로 반대편 차량과 충돌하는 끔찍한 상황을 맞은 것이다.
당시 의사는 다리 출혈이 심해 수술을 강행하면 자칫 목숨을 잃을 수 있다고 만류했지만, 부모가 수술 동의서에 사인해 결국 두 다리를 잘라냈다.
이후 그는 부모를 원망하며 3년을 술로 허송세월했다. 두 다리 절단 수술에 동의한 부모가 그렇게 미웠다고 한다.
장애 2급 판정을 받은 그는 2009년 친구들의 권유로 훨체어농구를 만나면서 부모에게 굳게 닫았던 마음의 문도 열었다.
신의현은 "사고가 났을 때는 죽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
죽은 목숨이던 나는 부모님 덕분에 덤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손해 볼 게 없는 인생"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제 11살 딸과 7살 아들의 아빠이자 한 집안의 가장이어서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평창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 부모님의 목에 걸어드려 못다 한 효도를 대신하고 싶다"고 각오를 밝혔다.
chil881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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