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을 심리 중인 헌법재판소의 박한철 소장이 심판 결정 시점을 '3월 13일 이전'으로 못 박는 듯한 발언을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달 31일 임기가 끝나는 박 소장은 25일 9차 변론기일에서 "헌재 구성에 더 큰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늦어도 3월 13일 전까지 최종 결정이 선고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이 사실상 제가 마지막으로 참여하는 변론 절차이고 다른 한 분의 재판관 역시 3월 13일 임기 만료를 목전에 두고 있다"면서 "재판관 두 명의 공석으론 탄핵심판 절차를 제대로 진행할 수 없어 그 전에 종결되고 선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두 9명인 헌재 재판관 중 2명이 궐위인 상태에서, 6명이 필요한 심판 결정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취지의 발언인 듯하다.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중에 널리 퍼진 '2말 3초'(이르면 2월 말 늦어도 3월 초) 설을 헌재 소장이 직접 입에 담은 격이어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만약 '3월 13일 이전'에 헌재가 인용 결정을 하면 그로부터 60일 이내에 차기 대통령 선거를 해야 한다. 그런 정치적 민감성을 생각할 때 퇴임을 앞둔 박 소장이 굳이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박 대통령 측은 기다렸다는 듯이 반박하고 나섰다. 법률 대리인단의 일원인 이중환 변호사는, 박 소장의 발언이 언론에 보도된 권성동 국회 소추위원의 말과 비숫하다면서 "헌재가 국회 측 의견을 그대로 말한 것이라면 심판 절차의 공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중대결심' 운운하며 대통령 측 대리인단의 전원 사퇴를 시사하기도 했다. 이날 박 소장과 이 변호사는 고성의 거친 언사를 주고받으며 헌재 재판정에선 보기 드문 장면을 연출했다. 그동안 헌재 심리를 공정하게 이끌어온 것으로 평가받던 박 소장이 퇴임 전 마지막 변론에서 옥에 티를 남긴 것 같아 아쉽다.
'욕곡봉타(欲哭逢打)', 우리 말로 '울려는 아이 뺨을 때린다'는 속담이 있다. 일이 틀어지려 하는데 되레 충동질을 해 더 큰 분란을 일으키는 것을 빗대어 말한다. 이날 헌재 소장과 대통령 측 대리인 사이에 벌어진 볼썽사나운 설전이 비슷한 경우가 아닌지 모르겠다. 대통령 측 대리인단은 그동안 시간을 끌려고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사람 마음을 뒤집어볼 수는 없지만 충분히 그런 의심을 살 만했다. 헌재 주변에서는 변론기일을 연장할 수 있는 변수로, 대통령 측 대리인단의 전원 사퇴와 박 대통령의 헌재 출석 가능성이 제기돼 왔다. 박 소장의 발언을 곧바로 맞받아친 대통령 측 대리인의 반응을 보면 관측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는 것 같다. 물론 박 소장이 국회 측 소추위원과 어떤 교감을 하거나 은근히 그쪽 편을 들어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하지만 헌재 심판을 둘러싼 공정성 시비가 그의 발언에서 촉발됐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헌재는 법률에 근거해 정치적 사건을 재판한다. 재판관 9명 중 2명이 퇴임으로 비게 되는 상황은 재판부가 심각하게 고려할 수 있는 문제다. 하지만 고민을 하든, 의견을 나누든 내부적으로 끝내야 했다. 며칠 뒤 퇴임할 소장이 그런 식으로 단정적인 말을 하는 것은 여러모로 신중하지 못했다. 남아서 심리를 끌고 가야 할 재판관들한테도, 판단과 재량의 여지를 줄일 것이라는 점에서 부담이 될 수 있다. 끝까지 공정함의 대의명분을 움켜쥐고 외부의 시비와 압박을 차단해야 할 헌재가 스스로 입지를 흔든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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