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A 한때 "테러 예방" vs 美 의회 "성과 없었다"
학계 "가혹한 신문에 오히려 가짜 기억 생성 우려"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신임 대통령이 고문 부활을 검토하겠다고 밝혀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슬람국가(IS)와 같은 극단주의 무장세력의 폭력에 맞불을 놓겠다며 고문을 전술의 한 가지로 내세웠다.
고문이 인권침해 우려 때문에 일찌감치 1948년 유엔 총회에서 금지된 만큼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윤리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크다.
세계질서를 주도한 미국이 앞장서서 고문을 운운하면 지구촌에 산재한 권위주의 정권들이 이를 고문허용 신호로 받아들일 것이라는 우려도 쏟아진다.
고문이나 비밀감옥의 부활을 극단주의 세력이 테러를 저지를 명분이나 선동 소재로 삼을 것이라는 걱정도 뒤따른다.
이 같은 도덕적 문제, 국제사회에 끼칠 악영향을 떠나 고문의 실제 효과가 있을지를 두고도 논쟁이 격렬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5일(현지시간) 미국 ABC방송 인터뷰에서 "정보기관 최고위 인사들로부터 고문이 효과적이라고 들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문은 정보나 자백을 얻거나 단순히 괴롭히기 위해 대상자에게 육체, 심리적으로 고통을 가하는 행위다.
자백을 얻거나 단순히 괴롭히기 위한 고문은 정당화될 수 없지만 정보수집의 경우에는 얘기가 달라진다.
테러리스트 한 명에게서 캐낸 정보로 잠재적 피해자 수십, 수백 명을 구할 수 있다면 고문은 필요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문의 필요성을 강조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가정은 '시한폭탄 시나리오'다.
수천 명의 사상자를 낼 수 있는 시한폭탄이 설치된 곳을 아는 테러리스트 한 명을 체포했으나 입을 열지 않는 조급한 상황에 무엇이 필요하겠느냐는 것이다.
과연 고문으로 폭탄의 소재를 알아낼 수 있을까.
실제 고문 사례를 분석한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보고서와 이 보고서에 대한 상원의 조사 결과는 서로 엇갈린다.
미국 뉴욕타임스의 2014년 12월 9일 보도에 따르면 CIA는 고문을 통해 얻은 정보로 8차례 테러를 저지하고 용의자를 체포했다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국제테러단체 알카에다의 수괴 오사마 빈 라덴을 제거한 2011년 작전도 가혹한 신문 기법으로 얻어낸 성과로 홍보됐다.
그런 기법 중에는 일주일 가까이 잠을 재우지 않기, 항문으로 음식이나 물 집어넣기, 러시안룰렛을 시키겠다는 위협, 익사에 가까운 물고문 등이 포함됐다.
그러나 나중에 진상 조사에 나선 미국 상원 정보위원회는 고문과 관련한 CIA의 이 같은 주장을 정면으로 부정했다.
정보위는 CIA가 고문으로 얻은 정보 중에 특별한 것이 없었으며 백악관, 의회, 언론에 성과를 과장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앞서 CIA도 1989년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고문이 오히려 거짓말을 끌어낼 수 있어 비생산적이라고 밝힌 적이 있었다.
학계에서는 극심한 고통, 스트레스 때문에 정보를 기억해내는 데 장애를 겪거나 가짜 기억이 생성될 수 있다는 보고를 찾아볼 수 있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학술지 '법과 정신과학 국제저널' 2013년 1, 2월호를 인용해 훈련받은 군인들조차 80% 이상이 고통스러운 신문에 잘못된 기억을 떠올렸다고 보도했다.
군인 800명을 모의 포로수용소에 고립시킨 뒤 스트레스 강도가 높은 신문을 가했더니 특정 상황의 사실관계를 다르게 기억하거나 사람을 제대로 분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jangj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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