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연 네 번째 소설집 '콩 이야기'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작가 김도연(51)이 네 번째 소설집 '콩 이야기'(문학동네)를 냈다. 책 표지에는 콩 한 쪽과 원고지·연필이 놓인 좌식 탁자가 그려져 있다. 20년 가까이 강원도를 무대로 글을 쓰는 작가의 생활을 함축한다.
소설집에는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쓴 단편 9편이 실렸다. 대체로 배경은 농촌이고 주인공은 작가와 비슷한 나이의 남자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김도연 소설의 매력은 조용하고 평화로운 정경의 서정성이 아니라 꿈과 현실의 경계를 지우는 환상성에 있다.
'애니멀즈 단란주점'에서 작가의 상상력은 전래동화에 필적한다. 술집에서 잠들었다가 깨어 화장실에 갔더니 멧돼지가 양변기에 앉아있다. 어느 날 외제 차를 타고 산골짜기에 들어온 미모의 여자가 차린 술집이다. 술값도 만만찮은데 이유를 알 수 없는 인기를 누리는 이 단란주점을 처음 찾은 날이었다. 잘못 찾아 들어간 방에서 목격한 광경은 호황의 비결을 초현실주의 회화처럼 보여준다.
멧돼지 한 마리가 머리에 두루마리 화장지를 두른 채 노래를 부르고 다른 멧돼지들은 발렌타인 양주병에 빨대를 꽂은 채 마시고 있다. 멧돼지들은 술값을 산삼으로 감당했다. 다른 방에서 마주친 누렁이와 송아지·흑염소는 주인공의 식구들이다. 이곳 술집에 재미를 들인 동네 형님에게 주인공은 말한다. "형, 그 여자 여우예요."
자전적 소설이라는 의심이 강하게 드는 표제작 '콩 이야기'는 도서관 책상에 콩알을 올려놓고 콩에 관한 글을 구상하는 한 작가가 주인공이다. 10년 넘게 매일같이 도서관을 출입하다보면 직원들 심심할 때 말 상대를 해주고 술도 마셔줘야 한다. 그 사이 직원들은 세 차례 인사발령으로 바뀌었다. 작가는 펼쳐놓은 콩들을 가져가 옥상에 심는 사서에게 작업도 걸어본다.
"뭔 소릴 하는지. 아, 사람이 좀 알아듣게 얘기해. 혼자 중주발거리지 말고!" "귀가 막혔나. 못 들었으면 쓸데없이 떠들지 말아요! 자기한테 한 소리 아니니." 소설 속 작가는 이가 성하지 않고 청력도 약해진 노부모의 말다툼을 자장가로 삼는다. 소소하고 정겨운 풍경은 소설집 전체에 펼쳐진다.
1991년 강원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작가는 지금까지 발표한 대부분의 소설을 고향인 강원도 평창의 진부도서관에서 써왔다. 3년 전엔 진부도서관과 작별했다.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평창의 작업실 전셋값이 너무 올라 원주 변두리 마을로 이사하면서다. 지금은 원주·횡성의 도서관을 오가며 글을 쓴다. 일주일에 두 번씩 저녁에 원주의 탁구장 관장에게 레슨을 받는다. 레슨비는 월 12만원. 딱 받는 만큼만 '떠듬떠듬' 가르쳐준다.
26일 저녁 통화로 근황을 전한 작가는 "우리가 어떻게 백 명, 천 명을 이해하겠나. 모든 사람을 이해한다며 소설을 쓰는 건 웃기는 얘기다. 최소한 한 사람은 이해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혼자 사는 건 별로 아름답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가는 아직도 못 갔다"며 웃었다. 탁구장 관장과 막걸리를 나누던 중이었다.
실제 꿈 얘기를 작품에 쓰기도 하는 작가는 "소재가 잘 안 나올 때면 잠자는 시간이 기다려질 정도"라면서도 꿈을 들여다보는 시각을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소설이 내 꿈을 들여다보려 한 거라면 이제는 다른 사람의 꿈을 들여다봐도 되지 않겠나 싶다." 292쪽. 1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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