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로 트럼프 대통령 당선 보며 희망 물거품 될까봐 울어"
러 인권운동가, 북-러 송환조약에 "범죄…구소련처럼 부끄럽다"
(워싱턴=연합뉴스) 강영두 특파원 =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식당(韓食堂)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던 북한 탈북자 김모(39)씨가 러시아의 한 인권난민운동단체의 도움을 받아 지난해 11월 무사히 미국에 도착했다고 외교·안보 전문매체인 포린 폴리시가 전했다.
25일자 포린 폴리시 보도에 의하면, 김씨는 1990년대 북한의 대기근 당시 중국으로 탈출해 8년간 일을 하다가 거듭된 신청에도 난민 지위를 얻지 못하자, 난민 지위를 얻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중-러 국경을 넘다가 붙잡혀 북한에 송환돼 노동수용소에 보내졌다.
갖은 고생 끝에 겨울철 어느 날 새벽 30명가량의 동료와 함께 노동수용소 탈출을 감행한 그는 얼어붙은 강을 건너는 데 성공해 다시 중국에서 막노동하며 버티다가, 2013년에 블라고베셴스크 부근의 아무르 강을 건너 러시아로 들어갔다.
당시 김씨는 한 러시아 국경순찰대원에게 자신의 신원을 밝히고 난민 신청을 원한다고 했지만, 도리어 체포돼 4개월간 구치소에 감금됐고, 약식재판에서 불법 국경통과 혐의로 미화 165달러의 벌금형을 받았다.
재판정 바깥에서 북한 기관원들이 대기하는 것을 수상히 여긴 러시아 인권난민운동단체 '시빅 어시스턴스' 소속 변호사의 도움으로 송환을 피하고 모스크바로 가게 됐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모스크바로 간 김씨는 한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며 난민 신청을 시도했지만, "북한으로 돌아가면 총살을 당한다는 점을 믿을만하게 입증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번번이 거부됐다가, 2016년 5월에야 1년짜리 임시 난민 허가를 받게 됐다.
그의 장래 신변을 걱정해온 이 단체가 서방국가를 대상으로 그를 난민으로 받아들여 줄 것을 수소문하던 중, 국제이주기구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미국에서 안식처를 찾게 됐다.
긴장의 연속이었던 3년의 러시아 생활을 마치고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에서 비행기에 탑승해 무사히 미국으로 온 김씨는 TV를 통해 대선 결과를 지켜보면서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대통령 당선으로 피난처를 갈구하던 자신의 희망이 물거품이 될까 두려워 울었다고 시빅 어시스턴스 관계자가 전했다.
시빅 어시스턴스에 따르면, 최근 몇 년 전부터 정치·경제 관계가 개선되고 있는 북한과 러시아는 범죄자와 더불어 상대국에 "불법으로 입국했거나 거주하는" 모든 사람을 송환한다는 조약에 서명함으로써, 러시아 내 북한 탈북자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고 한다.
노벨평화상 후보로도 하마평에 올랐던 시빅 어시스턴스 회장인 러시아의 인권·난민 운동가 스베틀라나 간누슈키나는 "북한과 맺은 러시아의 모든 조약은 도움을 청하러 우리에게 온 사람들에 대한 하나의 범죄다. 나는 구소련 시절처럼 우리나라가 그 사람들을 넘겨줘 고문과 죽음에 처하게 하는 것이 부끄럽다"고 러시아 정부를 비판했다.
k027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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