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장현구 특파원 =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시대에 잘 팔리는 소설은 그가 생각하는 이상향과는 사뭇 다른 '디스토피아'(dystopia·반(反)이상향)의 내용을 담고 있다고 영국 BBC 방송이 29일(현지시간) 소개했다.
지난 20일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 참석 인파가 역대 최대였다는 트럼프 측근들의 발언과 이를 둘러싼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s)이란 신조어 논란으로 조지 오웰의 소설 '1984'가 때아닌 인기를 누리고 있다.
1949년 발간된 이 소설은 전체주의 사회에서 '빅 브라더'가 감시자로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는 디스토피아를 그렸다.
29일 현재 아마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소설 1위를 지킨 '1984'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전보다 판매량이 무려 9천500% 이상이나 폭증했다.
오웰의 또 다른 소설 '동물농장'도 덩달아 잘 팔려 해당 출판사는 지난주에만 오웰의 소설 10만 권을 추가 인쇄했다.
'동물농장' 역시 독재자와 사회주의 문제를 통렬하게 풍자한 정치 우화다.
BBC 방송이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소개한 트럼프 시대에 잘 팔리는 소설은 다음과 같다.
▲ '이건 여기서 일어날 수 없어'(싱클레어 루이스·1935년) = 27일 아마존 베스트셀러 순위 7위에서 29일 4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미국의 위대함을 복원하겠다는 공약으로 애국심과 미국의 전통적인 가치를 강조해 대통령에 당선된 버젤리우스 버즈 윈드립이 독재자가 됐다는 풍자 소설로 트럼프와 너무나 흡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연구단체인 '싱클레어 루이스 소사이어티'의 샐리 페리는 BBC 방송 인터뷰에서 "버림받은 백인 남성 노동자를 향한 메시지와 반(反) 이민, 국수주의 정서라는 측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윈드립에겐 유사점이 많다"고 평했다.
아울러 "소설이 윈드립은 물론 '미국 예외주의'로 낙관하는 게으른 지식인과 진보주의자도 풍자한다"며 지금도 시사하는 점이 많다고 덧붙였다.
▲ '1984'(오웰·1949년) = 소설 속 전체주의 국가 '오세아니아'의 당(黨)은 진실을 덮기 위한 간명한 세 가지 구호를 설파한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을 강조해 사람들의 의식을 말살한다. 그래서 '2+2=5'라는 새로운 진리도 가능하다.
끊임없는 왜곡으로 상반된 두 개의 믿음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전체주의 사회 분위기에서 오늘날의 미국 상황을 비교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거짓' 또는 '허구'라는 분명한 표현 대신 '대안적 사실'이라는 기괴한 말이 돌면서 각종 패러디가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쏟아졌다.
▲ '멋진 신세계'(올더스 헉슬리·1932년) = 2년 전 아마존 베스트셀러 100 목록에선 찾아볼 수 없었지만, 27일 10위까지 오른 책이다.
2540년, 인간이 개발한 과학 문명에 인간 스스로 노예가 돼 존엄성을 상실하는 내용을 그렸다. 전체주의 사회의 노예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는 분위기에서 문학으로 인간의 정체성을 찾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BBC 방송은 오웰의 '1984', '동물농장'보다 '멋진 신세계'가 현실을 더욱 정교하게 묘사했다는 일부 문화 평론가들의 발언을 소개했다.
▲ '화씨 451'(레이 브래드베리·1953년) = 책이 금지된 24세기 암울한 미래 사회에서 불법으로 소장한 책을 뒤져 불에 태우는 한 남성이 직업과 삶의 가치를 스스로에게 묻는 내용을 담았다. 화씨 451도(섭씨 232도)는 책이 불에 타기 시작하는 온도다.
검열, 과장된 정치 선전, 자유로운 사상의 억압 등 소설의 경고를 주목할 만하다.
▲ '협상의 기술'(도널드 트럼프·1987년) = 소설은 아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좋아하는 책 중 하나로 꼽은 자서전이다. 부동산 재벌로서 사람을 만나고, 포섭하며 다루는 기술, 문제 파악 및 해결, 분석 기술 등을 집대성한 성공담이다.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이는 트럼프를 알려면 이 책을 볼 필요가 있다는 평이 나오면서 아마존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11위로 뛰어올랐다.
자서전을 함께 쓴 대필작가 토니 슈워츠는 "트럼프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똑똑하지 않다"며 수차례 트럼프를 비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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