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문정식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개 이슬람 국가 국민의 미국 입국을 제한하는 반이민 행정명령에 이어 외국 전문인력들에 대한 취업비자도 제한할 조짐을 보여 미국 IT업계에 상당한 파장을 예상된다.
31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IT기업들이 해외 고급 인력을 채용하기 위해 활용하는 취업비자 제도의 개선을 지시하는 행정명령을 입안했으며 대통령의 서명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블룸버그가 입수한 행정명령 초안에 따르면 "우리의 이민 정책은 국익에 우선적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마련되고 이행돼야 한다"는 문구가 포함돼 있다.
행정명령 초안은 이런 원칙을 전제로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비자 프로그램은 미국 노동자들, 합법적 거주자의 시민권을 보호하고 우리의 잊혀진 노동자들과 그들의 일자리를 보호하는 것을 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행정명령은 전문직 취업비자인 H-1B는 물론 기업 주재원 비자인 L-1, 투자 비자인 E-2, 관광비자인 B-1, 문화교류 비자인 J-1, 이공계 선택적 실무연수 비자인 OPT 등 다양한 비자의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전문직 취업비자인 H-1B 비자 제도에 손을 대는 쪽에 역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미국 IT업계를 긴장시키는 것도 H-1B 발급이 제한될 가능성이다.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은 언론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앞으로도 이민 정책 개혁의 하나로 H-1B 비자 문제를 언급하게 될 것이며 행정명령은 물론 의회와의 공조를 통해 제도 변화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행정명령은 대통령의 서명이 이뤄진 뒤 90일 안으로 비자 프로그램의 효율적 운영과 비자 배정 방식에 관한 대안을 제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어 머지않아 그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H-1B 비자는 현재 추첨 방식으로 매년 8만5천 건이 발급되고 있다. 해마다 신청자가 늘어나는 추세로, 지난해의 신청 건수는 발급 건수의 3배를 넘었다.
국내에서 숙련된 기술인력을 구하지 못한 미국기업들이 해외인력을 채용하는 것을 돕기 위한 취지에서 마련된 것 제도로, 그 덕택에 많은 미국 기업들이 STEM(과학과 기술, 엔지니어링 및 수학) 분야에서 외국인 고급인력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게리 버틀스 선임 연구원은 STEM 분야의 이민 노동자들은 미국에서 창업과 특허 취득에 기여함으로써 수만∼수십만 명의 일자리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면서 이들의 비자 신청의욕을 꺾는 것이 어떻게 미국의 국익을 증진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개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H-1B 비자를 문제 삼고 있는 것은 최근 몇 년간 H-1B 비자가 당초 도입 취지와는 달리 미국인을 외면하고 해외에서 값싼 인력을 채용하는 방향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커진 것과 무관치 않다.
미국 의회에서 올해 들어 비자 제도의 개선을 요구하는 3개 법안이 상정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주에 독자적 법안을 제출한 조 로프그렌 상원의원(민주당·캘리포니아주)은 H-1B 비자의 발급 요건을 강화할 것을 주문했다.
그는 H-1B 비자가 전 세계에서 최고·최선의 인력을 찾고 미국의 노동력에 숙련 노동자를 보충토록 한다는 당초 취지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법안의 주안점이라고 말했다.
구글과 같은 미국의 IT 대기업보다는 이들의 아웃소싱을 담당하는 인포시스, 타타 컨설턴시 서비스, 와이프로 등 인도의 IT기업들이 실제로 H-1B 비자 제도의 최대 수혜자라는 지적도 없지 않다.
최근 수년간의 사례를 보면 아웃소싱 업체들이 H-1B 비자의 대부분을 차지한 반면에 여타 IT기업들은 필요한 외국인 인력을 확보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는 설명이다.
하워드 대학의 론 히라 조교수는 2014년의 경우, H-1B 비자의 5대 수혜자는 모두 타타 컨설턴시를 비롯한 아웃소싱 업체들이었다고 꼬집었다.
히라 교수는 H-1B 비자를 받고 아웃소싱 업체에서 일하는 외국인들은 애플과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에서 일하는 외국인들에 비해서도 급여 수준이 크게 떨어진다고 말했다.
미국 IT기업들은 제대로 된 전문인력을 찾지만, 아웃소싱 업체들은 몸값이 떨어지는 인재들을 채용한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행정명령은 비자 제도의 투명성 확보 차원에서 정부의 회계연도 마감 1개월 전에 프로그램의 수혜자 등 기초 통계를 담은 보고서를 공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가 정보공개 범위를 축소해 정보공개법에 따른 신청절차를 밟도록 한 것과는 방향을 달리 잡은 셈이다.
CNN머니는 오바마 행정부 시절에 수정된 J-1과 OPT 비자는 물론 E-2 비자 등도 이번 행정명령에서 개선 대상으로 언급돼 있고 특히 기업 주재원들에게 발급되는 L-1 비자의 소지자들에 대해서는 방문조사를 의무화한 점이 주목된다고 보도했다.
행정명령은 국토안보부가 6개월 안으로 모든 L-1 비자 소지자들에 대한 방문조사에 착수하고 2년 안으로 모든 취업 관련 비자의 소지자로 그 범위를 확대할 것을 제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CNN머니는 향후 90일간 미국 입국을 제한한 7개 무슬림 국가에 이라크가 포함됨에 따라 현지에서 대대적으로 유전 개발 사업을 벌이는 엑손 모빌이 난처한 입장에 빠질 것으로 예상했다.
엑손 모빌이 이라크 유전 개발 사업에 뛰어든 것은 트럼프 행정부의 국무장관 지명자인 렉스 틸러슨이 CEO(최고경영자)로 일하던 시절에 이뤄진 것이다.
한편 CNBC는 미국 보잉사가 이란과 이라크에서 모두 200억 달러의 여객기 주문을 받은 만큼 두 나라가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행정명령에 반발해 주문을 취소할 리스크가 없지 않다고 전망했다.
jsm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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