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미러클 4' 새벽 집필 투혼…입원 중 발간행사 참석
"예전의 위기극복 잠재력 다시 발견할 수 있다"…마지막 메시지
(세종=연합뉴스) 민경락 기자 = "몇 년 전만 해도 경제발전과 정치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나라라고 자처했지만, '코리안 미러클'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기가 쑥스러운 느낌마저 든다"
강봉균 전 재정경재부 장관은 지난해 11월 30일 '코리안 미러클 4 : 외환위기의 파고를 넘어' 발간보고회에서 한국 경제 상황에 대한 쓴소리를 쏟아냈다.
준비된 원고였지만 한 문장 한 문장 읽어내려가는 그의 표정은 그가 말하는 한국 경제의 위기만큼이나 밝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을 강조했다.
그는 "정치적 안정이 지금 가장 중요하다. 정치적 불확실성만 제거하면 예전의 잠재력을 다시 발견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힘주어 말하며 후배들을 격려했다.
지난달 31일 강 전 장관이 세상을 떠나면서 이날 발간보고회 참석은 그의 마지막 공식 일정이 됐다. 그의 고언 역시 그가 한국 사회에 던진 마지막 공식 메시지가 됐다.
'코리안 미러클 4 : 외환위기의 파고를 넘어'는 1997년 외환위기 전후의 어려움과 극복과정을 당시 경제수장들의 증언을 통해 전한 육성 기록물이다.
그는 이 책에서 "금융기관은 타율적 준관치체제에서 자율적 경쟁체제로 하루빨리 전환돼야 한다. 노동개혁에서는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과보호 장벽을 낮춰야 한다" 등 조언을 내놨다.
"김대중 정부 때는 야당 시절 정치적 측근들이 국정 참여를 스스로 포기하는 공개선언이 나오고 청와대 비서실부터 정치권 인사채용을 엄격히 제한, 정권에 대한 나름의 신뢰가 있었고 관련 고위직들의 비리부정이 없었다"며 마치 최근 국정 비선실세 파문의 원인을 지적하는듯한 발언도 책자에 담겼다.
"롯데그룹의 친족 간 경영권 분쟁사태를 초래한 상황은 아직도 기업지배구조 개선의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라며 기업들의 선진적 지배구조 확립, 경영 투명성 확보 등을 주문하기도 했다.
강 전 장관은 이미 3년 전부터 암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음에도 선뜻 이 책의 편찬위원장을 맡았다.
외환위기를 극복한 사령탑으로서 지금의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작은 지혜라도 후배에게 전하기 위한 마음이 컸다고 지인들은 전했다.
지난해 말 강 전 장관을 포함한 당시 경제수장들의 노력 끝에 '코리안 미러클4' 발간 작업은 거의 마무리가 됐지만 이와 동시에 그의 병세도 악화됐다.
입원과 통원을 반복하던 강 전 장관은 지난해 말 입원 치료에만 의지해야 했다.
'코리안 미러클 4' 발간 행사 당시에도 입원 중이었지만 편찬위원장으로서, 경제위기를 극복한 원로로서 그는 행사 참석을 강행했다.
강 전 장관의 한 지인은 "외환위기 당시 경제위기를 극복한 경험을 책에 담아내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셨다"라며 "투병 중에도 새벽에 일어나 집필하시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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