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발포와 헬기사격은 한 흐름…주목받지 못한 20사단 작전내용 살펴봐야"
(광주=연합뉴스) 정회성 기자 =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시민 다수가 목격한 군 헬기사격은 20사단의 전남도청 투입작전과 관련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김희송 연구교수는 1일 공개한 5·18 기간 헬기 사격 관련 군기록 종합 분석 초안'에서 이러한 주장을 펼쳤다.
김 교수 주장의 근거는 1980년 5월 21일자 특전사령부 전투상보·20사단 충정작전 상보·20사단 상황개요 보고 육군본부 자료·육군1항공여단 작전일지·전투병과교육사령부(전교사) 조치사항 및 22일자 광주지역 작전 요약, 27일자 위력시위 계획 등 군이 작성한 기록물이다.
5월 21일은 전남도청 앞 금남로에서 특전사의 집단발포가 있었던 날이자 고(故) 조비오 신부 등 많은 시민이 헬기사격을 봤다고 지목한 날이다.
김 교수는 자위권 발동이라는 신군부 주장이 집단발포 4시간도 지나지 않아 특전사가 도청에서 철수했던 정황상 논리적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21일의 집단발포와 헬기사격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이제껏 별다른 주목을 받지 않았던 20사단의 작전내용을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전사 전투상보에는 '21일 오후 3시 20사단 병력 헬기로 도청 투입 실패'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김 교수는 같은 날 20사단 충정작전 상보에도 '오후 4시 30분 61연대장과 대대장 3명이 헬기로 항공정찰을 하면서 공중기동작전이 불가하다고 판단' 내용이 명기된 점에서 특전사 전투상보 기록은 사실로 판단된다고 풀이했다.
그는 다른 군 기록에는 없었던 20사단 병력 도청 투입작전 실패 내용을 특전사령부가 구체적인 기록으로 남긴 이유에 대해 '불명예'의 책임을 희석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해석했다.
김 교수는 특전사보다 많은 병력과 항공기까지 파견한 20사단이 별다른 작전을 수행하지 않았다고 기록한 여러 군 자료가 거짓이라며 도청 투입작전 지원부대인 1항공여단 작전일지를 살펴보면 전모를 확인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여러 기록을 종합한 결과 21일 20사단의 광주시내 진입이 무산된 이후 오전 10시부터 가장 바쁘게 움직였던 부대는 항공여단이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때 2군의 구두지시로 소형공격헬기 500MD 2대가 출동했고, 무장 가능한 UH-1H 헬기 10대가 오후 1시 10분께 광주 상무대에 도착한 뒤 바로 다음 작전에 투입된 것으로 보인다고 부연했다.
이어 헬기를 이용한 도청 투입작전이 전개되기까지 특전사는 집단발포까지 감행하며 도청을 사수할 이유가 충분했으며 다수의 목격담이 등장한 오후 1∼3시 헬기사격은 항공기 임무 중 하나로 언급된 '명령에 따른 공중화력 지원'으로 자행된 것으로 추정했다.
김 교수는 "군 당국은 헬기사격을 증언한 조비오 신부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등 강경하게 그 사실을 부정했다"며 "헬기사격은 자위권 발동이라는 신군부 논리의 허구를 드러내는 결정적 증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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