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해영 기자 = 상속세를 적게 낼 목적으로 손자를 아들로 입양했더라도 "양자 입양이 바로 무효가 된다고는 할 수 없다"는 일본 최고재판소의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일본 부유층을 중심으로 절세목적의 입양이 널리 이뤄지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판결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사히(朝日), 마이니치(每日) 등 언론에 따르면 일본 최고재판소는 31일 "절세목적의 양자입양은 무효"라고 판단한 작년 2월 도쿄(東京) 고등법원의 판결을 뒤집고 이같이 판결했다. 이에 따라 "유효"로 판단한 1심 도쿄가정법원의 판결이 판례로 확정됐다.
이 재판은 2012년 당시 82세의 한 남성이 장남의 아들인 1살짜리 손자를 아들로 입양하자, 딸들이 아버지 사후 "절세목적의 양자입양은 무효"라며 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이 남성은 이듬해인 2013년 사망했다.
작년에 이뤄진 1심 판결에서는 고인이 양자입양 서류에 자필로 서명한 점 등을 들어 "양자입양 의사가 있었으므로 유효"라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2심인 고등법원은 손자를 아들로 입양하면 상속세를줄일 수 있다는 세무사의 설명을 듣은 사실을 지적, 양자 입양은 절세목적으로 "진짜 부자관계를 형성할 의사는 없었다"며 "무효"로 판결했다.
장남이 세무사를 아버지에게 데려와 절세 효과를 설명하도록 한 점을 순전한 '절세목적'의 근거로 들었다. 2심 법원은 그러나 유효와 무효의 판단기준은 밝히지 않았다.
일본의 상속세는 3천만엔(3억6천15만원)에 법정상속인 1인당 600만엔을 더한 금액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다. 법정상속인 수가 늘어나면 비과세 규모가 커지는 구조다.
최고재판소는 이날 판결에서 "절세목적과 양자입양 의사는 병존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오로지 절세를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고 해도 민법이 입양 무효로 규정한 "입양의사가 없는 경우"에 해당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2심 법원은 "입양에는 '진짜 부자관계를 형성하려는 의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지만 최고재판소는 판결문에서 이 점은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이번 사건의 경우 "입양의사가 없었는지 여부를 짐작할만한 정황이 없다"며 양자입양은 유효하다고 밝혔다.
일본의 경우 절세목적의 양자입양은 오래전부터 널리 이뤄져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 10명 이상의 양자를 들인 사례가 드러나 사회문제가 되는 바람에 1988년 양자입양에 의한 법정상속인수를 자식이 있는 경우 1명, 없는 경우 2명으로 제한하는 내용으로 세제개편이 이뤄졌다.
이번 판결에 대해 교토(京都)산업대학의 와타나베 야스히코 교수(가족법)는 "양자입양에는 부자관계 형성뿐 아니라 상속인을 늘리려는 목적도 있고 이점은 사회적으로도 널리 인정돼 왔다"면서 "이번 판결은 절세목적과 입양의사를 구분하고 있어 종전의 사고방식의 연장선상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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