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연합뉴스) 김선호 기자 = 일제 강점기 36년에서 해방된 직후 우리나라 풍경과 생활상을 보여주는 사진이 대거 발견됐다.
미군 혹은 군사고문단이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 중에는 희귀한 장면이 다수 포함돼 눈길을 끈다.
이 사진은 부산에서 20년 넘게 근대 문물과 역사자료 등을 수집하고 분석해 온 김한근 부경근대사료연구소 소장이 미국의 한 경매사이트에서 구한 컬러 슬라이드 필름을 스캐닝한 파일이다.
해방 직후에 찍은 고화질 컬러 슬라이드 필름이 발견된 것은 이례적이다.
70년이 지났지만 보관상태가 좋아 사진 화질이 무척 좋은 편이다.
촬영자는 로버트 시겔(Dr. Robert M Siegel)로 필름에 표기돼 있다.
촬영 시기는 슬라이드 필름 마운트에 기록된 내용으로 볼 때 1946년 5∼11월과 1947년 2월로 추정되며, 인천·서울·춘천·강릉 순으로 촬영된 것으로 보인다.
우선 눈에 띄는 사진은 콜라와 맥주를 마시는 선비 모습이 담긴 2장이다.
흰 한복에 갓을 쓰고 흰 수염을 기른 노인이 유리병에 든 콜라와 맥주를 한 손에 들고 마시는 장면이 재미있다.
맥주병에는 '필스 비어(Piels beer)'라는 로고가 붙어있다. 필스 비어는 당시 미국에서 제조된 맥주 브랜드다. 콜라병은 외관 생김새로 봤을 때 '코카콜라'로 추정된다.
동해의 한 바닷가에서 소금을 만드는 사진도 시선을 잡는다.
바닷물을 말려 소금을 만드는 남해나 서해와 달리 동해에서는 주로 바닷물을 끓이는 방식으로 소금을 만들었는데 실제 사진이 발견된 것은 흔치 않은 일로 평가된다.
한국군의 모태가 된 국방경비대 소속 군인 2명이 제복을 입은 채 나란히 서 있는 사진도 있다.
인파로 북적이는 서울 북창동 거리 사진에는 당시 대규모 무역상인 '고려양행'이 보이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 연합국 수뇌부가 모인 포츠담 회의의 영향을 받은 '포쓰탐'이라는 이색 간판도 흥미롭다.
젖가슴을 내놓은 채 아이를 업은 여인, 소풍 나온 아이들, 덕수궁 행락객들, 우물가에서 쌀 씻는 아낙들, 빨래터 풍경, 이사 가던 중 길에 앉아 밥 먹는 가족, 운동장에서 노는 아이들, 함지박 짐을 이고 가는 여인들, 소 몰고 가는 노인, 거름통 지고 가는 남정네 등 서민 생활상도 사진 속에 고스란히 담겼다.
특히 사진 속 아이들은 맨발 차림에 일본군 옷을 줄여 입고 가방 대신 보자기를 둘러매는 등 물자가 부족했던 당시 시대 상황을 여실히 보여줬다.
반듯하게 차려입은 도시 아이와 빡빡머리에 웃통을 벗은 채 바지만 겨우 입은 시골 아이의 모습도 대조적이다.
이외에도 지금은 사라진 인천 만수대 건물,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가지 풍경, 강릉과 인천의 농어촌과 항구 모습, 보리 타작, 사찰, 서울의 한 성벽 등도 필름에 담겼다.
김한근 부경근대사료연구소 소장은 1일 "1945년 해방 후부터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사이는 당시 생활상이나 풍경을 기록할 주체나 장비도 거의 없었던 근현대 역사의 암흑기였다"며 "상태 좋은 컬러 슬라이드 필름이 발견돼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말했다.
wink@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