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당대에 안목 높은 이가 없다면 그것은 시대의 비극이다. 천하의 명작도 묻혀 버린다. 많은 예술 작품이 작가 사후에야 높이 평가받은 것은 당대에 이를 알아보는 대안목이 없었기 때문이다."
유홍준 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가 예술을 보는 눈, 안목을 열쇳말로 엮은 명작 해설서 '안목'을 펴냈다. '국보순례'(2011) '명작순례'(2013)와 함께 '유홍준의 미를 보는 눈' 3부작을 이루는 책이다.
책은 불상과 청자, 백자, 회화 등 전통 미술에서 빼어난 안목을 보여준 이들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김부식이 '삼국사기'에서 백제의 궁궐 건축 미학을 설명한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았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았다)는 시대를 넘어 한국인의 미학을 보여주는 경구다. 추사 김정희 글씨를 "너무 기름지고 획이 두껍고 골기가 적었다는 흠이 있었다. (중략) 귀양살이에서 돌아온 뒤부터는 스스로 일법을 이뤘다"고 평한 박규수의 안목에서는 인생론까지 담긴 예술론을 읽을 수 있다.
본격적인 미술비평이 처음 등장한 18세기에 김명국, 이징, 윤두서의 화평을 비유 형식을 빌려 예리하게 평한 남태응의 '삼화가유평'은 한국 회화사의 자랑이다.
우리 문화유산은 재산이 축나고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일도 마다치 않고 미술품을 아낀 애호가들 덕분에 더 풍성해졌다. "조상의 예술품을 혼자 즐기기 죄송스럽다"며 백자를 비롯해 평생 모은 미술품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박병래, 전쟁 중에 일본으로 건너가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찾아온 손재형 등이다.
미술품을 투기 대상으로 접근하면서 수장가도 아니꼽게 보는 세간의 인식에 대한 안타까움도 중간중간 드러나 있다. 1937년 잡지 인터뷰에서 수장가들이 미술품 수집 비용을 스스럼없이 밝혔던 일을 거론하면서 "그 시절엔 `거금을 들여 우리 미술품을 모으는 것이 애국적 함의를 가진 일이라는 데 국민이 동의했으나, 지금은 도저히 할 수 없는 인터뷰 내용"이라고 지적한다.
책 후반부에는 변월룡, 이중섭, 박수근, 오윤, 신영복의 예술 세계에 대한 비평과 "한국 근현대미술사의 가장 우뚝한 봉우리"였던 김환기 작가론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났는가' 등이 실렸다.
저자는 김환기를 1970년대 단색화의 선구자로 보는 견해에 반대한다. 김환기 작품의 낱낱 점 속에 담긴 함축적인 이미지, 서정성의 환기는 형식의 탐구인 단색화와 전혀 다른 세계라는 설명이다.
경향신문에 연재한 '안목' 시리즈와 대형 기획전 등을 계기로 쓴 원고 등을 묶은 책이다.
눌와. 320쪽. 2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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