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매회 무대에 설 때마다 무척 떨려요. 여주인공이 공연 내내 무대에서 사라지지 않고 춤과 연기, 노래를 펼쳐야 하는 '원톱' 공연이기 때문에 긴장을 풀 수가 없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휘트니 휴스턴 노래잖아요. 제가 조금만 이상하게 불러도 관객분들 모두가 알아차리실 수 있는 명곡들이죠."
3월 5일까지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보디가드'에 여주인공으로 출연 중인 정선아(33)는 1일 LG아트센터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 작품을 "견뎌야 하는 왕관"이라고 표현했다.
'보디가드'는 1992년 개봉한 동명 영화를 바탕으로 한 뮤지컬로, 팝의 여왕이라 불리는 휘트니 휴스턴의 명곡 15곡으로 극이 전개된다.
휘트니 휴스턴 곡이 중심이다 보니 다른 작품과 달리 극의 넘버(노래) 대부분이 여주인공 '레이첼 마론'에 집중된다. 남자 주인공 '프랭크'가 딱 한 곡을 부르고, 레이첼의 언니 '니키 마론'이 몇 곡을 거드는 수준이다. 사실상 여주인공 홀로 노래하고 연기하고 춤추며 모든 걸 다하는 셈이다.
"다른 작품과 달리 공연 내내 여주인공이 등장하는 데다가 부르는 노래도 그 유명한 휘트니 휴스턴의 명곡들이죠. 여배우에게 레이첼 역은 그 무게를 견뎌야 하는 왕관 같은 존재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그만큼 반짝반짝 빛이 나고 영광스러운 배역이죠."
이 때문에 그가 이번 공연을 준비하며 가장 신경을 많이 쓴 부분은 단연 노래다.
그는 "휘트니 휴스턴 노래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명곡"이라며 "제가 원곡을 똑같이 부를 수는 없겠지만, 손톱에 때만큼이라도 닮을 수 있도록 원곡을 정말 많이 들었고 일주일에 두 번씩 보컬 레슨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가장 부담스러운 곡은 역시나 원작 영화와 함께 대히트를 기록한 '아이 윌 올웨이즈 러브 유'(I Will Always Love You).
"사실 관객분들이 그 곡 한 곡을 들으러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래서 그 노래가 가장 부담스럽기도 하고 가장 집중적으로 연습을 한 곡이기도 해요. 요즘도 공연이 있든 없든 하루에 두 번씩은 꼭 부르려고 해요. 최대한 그 원곡을 손상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뮤지컬 '보디가드'는 정선아와 함께 가수 양파(이은진), 손승연 등 가창력으로는 내로라하는 이들이 번갈아가며 이 역할을 소화하고 있다.
워낙 가창력이 출중한 배우들이다 보니 '귀가 호강하는' 장점이 확실하지만, 주인공 간 로맨스나 스토리의 짜임새는 엉성한 편이라는 지적도 받고 있다.
그는 "원래 사랑은 좀 느닷없이 온다"는 농담으로 작품을 방어했다.
"저도 관객들에게 극을 어떻게 더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레이첼이 디바로 살았지만 사랑에 목마르고 외로운 여자였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연기하고 있어요. 특히 노래로 극이 전개되는 측면이 많아 어떤 부분에서는 기교를 자제하고 최대한 대사처럼 부르기도 하죠."
뮤지컬 팬들은 늘 자신만만하고 화통한 정선아가 레이첼과 똑 닮았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정선아도 한국 뮤지컬계를 대표하는 간판 여배우 중 하나다. 고등학교 3학년 때인 2002년 신시컴퍼니의 '렌트' 오디션에 응시했다가 주인공으로 단박에 캐스팅된 이후 '아가씨와 건달들', '드림걸즈', '아이다', '위키드', '에비타' 등 여러 작품에서 주역을 꿰차며 승승장구해왔다.
어떤 작품을 맡겨도 흔들림 없는 가창력과 넘치는 끼, 화려한 외모로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는 "옛날과 많이 달라졌다"며 웃었다.
"예전에는 '쟤는 끼를 타고났다'는 식의 이야기가 듣기 좋았어요. '나 너무 잘해, 최고야' 라면서 기고만장하던 시절도 있었고요. 그런데 서른이 넘어가면서 천부적인 끼나 재능만으로는 끝까지 갈 수 없다는 걸 확실히 깨닫고 있어요. 제가 아무리 스스로 도취해있어도 그 공연을 보는 분들이 감동을 느끼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요즘은 관객분들에게 짧은 시간 동안만이라도 좋은 에너지와 행복감을 드리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커요. '노력하는 배우'라는 이야기도 듣고 싶고요. 저 정말 철들었나 봐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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