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이민 행정명령 탓에 치료 위한 미국행 보류…WP "생사가 걸린 문제"
(서울=연합뉴스) 김보경 기자 = 선천성 심장병으로 수술을 받아야 하는 9살 소말리아 아이, 암투병 중인 수단의 한 살배기 아기, 난민캠프에선 구할 수 없는 인공 항문 봉투를 달아야 하는 소말리아 소년….
건강 상태가 심각한 이들 꼬마 난민들은 애초 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난민캠프를 떠나는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들의 미국행은 갑자기 보류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난민의 미국 입국 프로그램을 120일간 중단하는 '반(反)이민 행정명령'을 발동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의 난민 입국 거부 조치로 의료지원이 절실한 난민 아동들이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고 지난달 31일 보도했다.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의 난민 지원단체인 '기독교세계봉사회'(CWS)는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명령은 투병 중인 난민 아동에게 사형선고와 다름없다며 이러한 사례들을 모아 미국 정부에 전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세라 크라우제 CWS 국장은 "선천성 심장병을 가진 9살 아이에겐 (미국행이 지연되는) 며칠은 너무 길다"며 "미국에서의 재정착을 기다리며 죽는 것은 개인에게 너무 불합리하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난민 프로그램 중단으로 곤혹스러운 상황에 부닥친 것은 비단 이들뿐만이 아니다.
현재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에서 미국 난민 수용 프로그램의 절차를 밟고 있는 사람 수는 약 8만 명이다. 특히 전쟁을 피해 인근 케냐로 피신한 후 미국행을 준비하고 있는 소말리아 난민 수만 1만5천 명에 달한다.
이 중 2천 명은 의료지원이 절실하거나 고문과 성폭행, 학대에 노출돼 보호 필요성이 긴급하게 제기된 '최취약' 난민들이다.
이들 난민 대다수는 까다로운 난민 심사를 거쳐 미국 정착이 승인됐지만, 미국행을 몇 주 혹은 며칠 앞둔 상태에서 트럼프의 행정명령에 직면했다.
이중 몇몇은 이미 미국에서의 생활방식 등을 가르치는 '문화 오리엔테이션'까지 수료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들이 미국행을 위해 난민캠프의 텐트와 인도적 지원까지 포기한 상태라는 것이다. 결국,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한 이들 난민이 "새로운 지옥 상태에 빠졌다"고 WP는 표현했다.
이들은 트럼프가 난민 입국을 중지한 120일 이내에 입국 기한이 만료돼 수개월 혹은 수년이 소요되는 난민 심사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한다. 이에 난민 지원단체들은 의료지원이 시급한 난민들은 다른 나라로 보내는 방안까지 강구하고 있다.
이본네 은데게 유엔난민기구 대변인은 "미국의 난민 프로그램은 세계 난민 문제를 해결하는데 아주 중요하다"며 "미국이 박해를 피해 나라를 떠난 이들을 도와주는 오랜 전통을 계속 이어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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