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새누리·바른정당 차례로 방문…'개헌·정치교체' 협력
오후 3시26분께 정론관서 전격 사퇴발표…참모들 '망연자실'
회견 후 참모진에 "너무 순수했다"…일부 참모는 눈물
(서울=연합뉴스) 배영경 류미나 이슬기 기자 =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1일 대선 불출마 선언은 그야말로 전격적이었다.
이날 오후 3시 26분께 불출마 뜻을 밝히기 위해 국회 정론관에 나타나기 직전까지 반 전 총장은 새누리당·바른정당·정의당을 차례로 방문하는 일정을 계획대로 소화했다.
그뿐만 아니라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정책 분야 '좌장'을 맡기는 등 이날 오전까지도 대선캠프 전열을 새로 가다듬는 작업이 진행될 만큼, 참모진마저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깜짝 발표'였다.
반 전 총장이 이날 오후 국회 정론관에 나타난 것은 오후 3시 26분께였다.
앞선 기자회견과 달리 이날은 기자회견 내용이 사전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표정으로 나타났지만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으로 시작되는 기자회견문을 읽어내려가면서는 반 전 총장의 표정이 점차 무거워졌다.
특히 "정치교체를 이루고 국가통합을 이루려 했던 순수한 뜻을 접겠다는 결정을 했다"며 예상치 못한 불출마를 선언하는 대목에서는 취재진 사이에서도 탄성이 흘러나왔다. 심지어 반 전 총장이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동안 배석했던 실무 보좌진 역시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반 전 총장은 참모진과 상의 없이 불출마를 결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기자회견 직후 반 전 총장은 자신에게 몰려든 취재진에 "오늘 오전에 결정했다", "혼자 결정했다"고 짧게 답하며 취재진에 둘러싸여 국회 밖으로 빠져나왔다.
캠프의 실무 보좌진도 망연자실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외곽에서 반 전 총장을 도왔던 한 핵심 조력자는 이날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어안이 벙벙하고 청천벽력"이라며 "오늘 기자회견을 한다기에 캠프 전열을 새로 정비하는 만큼 새로운 마음으로 재출발한다는 말을 할 줄 알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불출마 회견 직전까지 참모들은 전날 계약한 것으로 알려진 약 200평 규모의 여의도 대하빌딩 사무실에서 실무 준비에 매진 중이었다.
반 전 총장의 독자세력 구축의 기점이 될 것으로 여겨졌던 오는 8일 '대한민국 국민포럼' 출범을 앞두고도 참모진의 준비는 한창이었다.
여기에 반 전 총장이 이날 오전부터 오후까지로 잡혀있던 새누리당·바른정당·정의당 지도부 회동 일정까지 계획대로 소화했기에, 불출마 선언은 정치권에 더욱 뜻밖이었다.
다만 이날 여야 3개 정당 지도부와 나눈 대화 속에 반 전 총장의 고뇌가 엿보이는 대목이 눈에 띄기도 했다.
새누리당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이 "겨울엔 미끄러워서 여기저기 다니면 낙상하기 쉬워 집에 가만히 있는 게 좋다"며 듣기에 따라 반 전 총장의 모호한 정치적 입장을 꼬집는 농담을 던진 대목에서는 "허허" 웃으며 "알겠습니다"라고 받아넘겼다.
특히 회견 직전 이뤄진 정의당 심상정 대표와의 면담에서 "꽃가마 대령하겠다는 사람 절대 믿지 마시라. 총장님을 위한 꽃방석은 마련돼 있지 않다"는 심 대표의 조언에 반 전 총장은 "요즘 절감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심 대표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했다.
또 전날 일부 언론사 간부들과의 만찬에서도 반 전 총장은 불출마 의사를 내비치지는 않았지만 "권력욕이 없다"는 말을 했고, 전남 진도 팽목항 방문 상황 등을 거론하면서 "음해 공세가 심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반 전 총장은 국회에서 회견 직후 마포 사무실로 향했다. 참모 20여명이 모인 자리에서 반 전 총장은 "여러분을 너무 허탈하게 만들고 실망시켜 미안한 마음이다"라고 말했다.
반 전 총장은 "너무 순수했던 거 같다", "정치가 정말 이런 건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라는 발언으로 귀국 이후 정치권 경험에 대한 소회를 밝혔으며 이 자리에서 일부 참모는 눈물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반 전 총장의 멘토 원로그룹 중 한 명인 한승수 전 총리도 마포 사무실에 찾아가 반 전 총장과 대화를 나눴다.
ykb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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