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트럼프 행정부 '통신업체 편들기' 노골화

입력 2017-02-09 08:00  

美 트럼프 행정부 '통신업체 편들기' 노골화

'제로 레이팅' 조사 서둘러 종결…망중립성 약화 조짐

(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인터넷 '망중립성'(net neutrality) 정책을 약화하는 등 통신업체들에 유리한 방향으로 규제완화에 나서면서 한국을 포함한 세계 정보통신기술(ICT)업계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린다.

9일 국내 ICT업계에 따르면 이런 정책 변화로 미국 통신사업자들이 가장 큰 득을 보고, 시장 혁신을 노리는 콘텐츠공급자(CP)들에게는 불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장기적으로 보면 망중립성 약화로 신진 CP들의 파괴적 혁신 서비스에 악영향이 우려된다는 게 정보기술(IT)업계의 일반적 분위기지만, 이미 시장에 자리를 잡은 기존의 대형 CP들은 약간의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 미국 망중립성 정책 약화 조짐

망중립성이란 인터넷망사업자(ISP)가 인터넷으로 전송되는 데이터 트래픽을 그 내용·유형·기기 등에 관계 없이 동등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원칙을 뜻한다.

ISP는 원칙적으로 콘텐츠사업자(CP) 등 망 이용자가 송·수신하는 트래픽을 평등하게 취급해야 하며, 일부에 대해 봉쇄·지연·속도제한·우선권부여 등 차별적 대우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원칙은 과거부터 있었으나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5년 톰 휠러 위원장 재직 당시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오픈 인터넷 규칙'을 통해 이 원칙을 지금 형태로 재정립했다.

망중립성은 ISP의 트래픽 관리와 동전의 양면처럼 상충되는 관계다. 망중립성 의무가 강하게 부과될수록 ISP가 쓸 수 있는 트래픽 관리 방식에 제한이 커진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현재의 망중립성 정책에 관해 부정적 입장을 밝혀 왔으며, 취임 후 FCC 위원장에 망중립성 반대론자로 잘 알려진 아지트 파이 위원을 임명했다.

파이 신임 FCC 위원장은 공화당 지명 몫으로 2012년 FCC 위원이 됐으며, 2015년 FCC의 망중립성 정책 표결 당시 반대표를 던진 두 명 중 한 명이다.

지난달 23일 취임한 파이 위원장은 통신 규제완화를 바라는 통신사업자들의 요구에 호의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2015년 FCC가 공포한 오픈 인터넷 규칙을 뒤집거나 일부 조항을 폐지·완화하려고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관측은 이미 현실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 '제로 레이팅' 조사 조기종결

전임 휠러 위원장 재임 막바지인 지난달 11일 FCC 무선통신국은 주요 통신업체들의 제로 레이팅 관행에 망중립성 위반 소지가 있다는 판단을 담은 정책검토보고서를 냈다.

제로 레이팅은 특정 CP의 콘텐츠에 대해 소비자가 내는 요금을 면제해 주는 제도다. 일부 콘텐츠에 대해 통신료 면제라는 혜택을 주는 것이어서 사안에 따라 망중립성 위반에 해당할 소지를 배제할 수 없다. FCC는 제로 레이팅을 일괄적으로 금지하지는 않으며 개별 사안을 놓고 경쟁·혁신 저해 여부, 소비자 선택 등 여러 요소를 감안해 검토한다.

당시 FCC 무선통신국은 미국 제2위 이통사인 AT&T가 자회사인 위성방송업체 디렉TV의 영상 콘텐츠에 대해 적용한 제로 레이팅의 예를 들면서 다른 유료TV업체에 대한 차별이므로 오픈 인터넷 규칙 위반이 될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또 제1위 이통사인 버라이즌이 자체 운영하는 '고90' 비디오 서비스와 '프리비 데이터 360' 등 일부 요금제에 제로 레이팅을 적용하고 있는 점에 대해서도 비슷한 우려를 표명했다.

이에 대해 당시 평위원이던 파이 위원은 거세게 반발했다. 그는 위원인 그도 모르는 사이에 보고서가 공표됐다며 '곧 나갈 FCC 현 지도부'(휠러 당시 위원장을 지칭)에 불쾌감을 표시하면서 "동료 위원들을 따돌리면서 투자와 혁신을 저해하기만 하는 정치적 어젠다를 추구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어 파이 위원장은 취임 11일만인 지난 3일 전임 휠러 위원장 시절 착수한 제로 레이팅 관련 통신업체 조사를 종결하고 FCC 무선통신국의 정책검토보고서도 무효화했다.

이에 따라 버라이즌, AT&T, T-모바일 등 이통업체들과 케이블 업체 컴캐스트 등 대형 통신업체들에 조사 종결을 알리는 공문이 발송됐다.

파이 위원장이 취임 초부터 주요 통신업체들에 큰 선물을 준 셈이다.

◇ 통신업체들에 유리…IT업계는 우려

파이 위원장은 평위원 재직 시절부터 대형 통신업체들에 호의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그는 2001∼2003년 버라이즌 커뮤니케이션스의 법무 부문 부책임자로 일한 경력도 있다.

파이 위원장은 평위원 시절이던 2015년 다른 위원 4명과 마찬가지로 AT&T와 디렉TV의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으나, FCC가 부과한 합병 조건에는 반대했다. 조건 없이 합병을 허용하라는 의견이었다.

파이 위원장의 성향과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방향을 감안하면 FCC는 앞으로 계속 망중립성 정책을 약화하고 통신사업자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 통신 투자를 장려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변화에 대해 ICT업계 중 통신업계는 당연히 환영하는 분위기지만, 정보기술(IT)업계는 대체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ISP에 대한 망중립성 규제가 인터넷과 모바일 분야에서 '파괴적 혁신'의 토양 역할을 해 왔는데, 이것이 약화되면 IT분야에서 새로운 사업 모델의 출현과 보급이 어려워질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미 콘텐츠 시장에서 확고히 자리를 잡은 일부 대형 CP들의 입장은 이와 조금 다를 수 있다.

대형 CP들 중 상당수는 이미 ISP와 특별 계약을 맺어 자사 시스템을 ISP의 기간망에 직결해 서비스 속도를 높이고 있으며, 통신업체와 제휴해 자사 콘텐츠에 대한 제로 레이팅 도입을 검토 중인 경우도 있다. 망중립성이 일부 약화한다 하더라도 큰 문제가 안 된다는 태도다.

미국 정부의 ICT 정책이 세계 전체에 큰 여파를 미치는 점을 감안하면, 트럼프 행정부의 통신 규제완화와 망중립성 약화 움직임이 우리나라의 관련 정책에 간접적·장기적으로 영향을 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그간 정보통신부·방송통신위원회·미래창조과학부 등 규제기관의 행정지도 가이드라인을 통해 ISP에 망중립성 의무를 부과해 왔다.

현행 전기통신사업법 제50조(금지행위)는 전기통신이용자의 이익을 해치는 방식으로 전기통신서비스를 제공하는 행위 등을 금지하고 있으나, 실제 망중립성을 위반한 사례에 대해서는 법에 근거조항이 충분치 않다.

이와 관련, 유승희(더불어민주당·성북갑) 의원은 망중립성 규제에 대한 법률상 근거를 명확히 하기 위해 작년 9월 전기통신사업자가 합법적인 서비스를 불합리 하게 차별하지 못하게 하는 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작년 9월 대표발의했다.

당시 유 의원은 2015년 미국 FCC의 오픈 인터넷 규칙을 망중립성 강화의 예로 들면서 우리 정부도 망중립성 관련 법적 기반을 마련해 트래픽 정보공개와 투명성 제고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법안은 다른 개정안들과 함께 지난달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에 회부된 상태다.

solatid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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