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써야만하는' 석유류·식료품 물가 상승에 서민고통 가중
"유가 등 공급충격에 따른 것이어서 곧 안정세 찾을 것"
(세종=연합뉴스) 정책팀 = 국제유가 상승에다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AI) 확산, 설 명절 수요 확대 등의 요인이 겹치면서 1월 소비자물가가 4년 3개월 만에 2%대에 올라섰다.
취업난과 소득 정체라는 어려움 속에서도 그나마 서민층의 위안이 됐던 저물가 혜택마저 사라진 셈이다.
특히 꼭 써야만 하는 석유류와 각종 식료품의 물가 상승 폭이 커 서민 고통이 가중되는 모습이다. 일각에서는 당분간 2%대 물가상승률이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다만 최근 물가 상승세는 경기 활성화에 따른 수요확대 보다는 유가와 농산물 등 공급측 요인에 의한 것인 만큼 곧 안정세를 되찾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 유가 반등하고 AI 터지고…소비자물가, 4년3개월 만에 첫 2%대↑
2일 통계청의 1월 소비자물가 동향을 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1년 전 같은 달보다 2.0% 올랐다.
소비자물가 상승폭은 2012년 10월 2.1% 이후 4년 3개월 만에 가장 컸다.
월별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상반기 대부분 0%대 상승률에 그쳤다. 하반기 들어 1%대로 올라서긴 했지만 가장 큰 폭의 상승률은 지난해 10월, 11월 기록한 1.5%였다.
2015년에는 1월과 12월을 제외하고는 매달 0%대 저물가 기조를 이어갔다.
그간 소비자물가가 0∼1%대 상승에 그친 것은 기록적인 유가 하락세 및 글로벌 경기 부진과 관련이 깊다.
원자재를 대부분 수입해야 하는 한국 입장에서 유가 하락은 기업의 생산비용을 줄여 상품 가격을 낮추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실제 두바이유 기준 국제유가는 지난해 1월 26.9달러까지 내려가며 2003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다.
세계 경제 수요가 둔화하며 주요국의 상품·서비스 물가가 하락했고 이에 따라 국내에 들어온 수입상품·서비스물가가 내려가 전체 물가 상승률을 낮추는 영향도 있었다.
저물가 기조가 이어지며 중기 물가안정목표(2%)에 미달하자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해 10월 직접 물가 설명회를 열어 물가가 목표치에서 벗어나는 원인과 전망 등을 밝히기도 했다.
◇ 생활물가지수 고공비행 …서민층 고통 가중 우려
그러나 불과 몇 달 전까지 이어지던 저물가 우려가 무색하게도 정유년 새해 첫 달부터 물가는 2%대로 치솟았다. 여기에는 국제유가가 지난해 말부터 반등한 영향이 컸다.
두바이유는 지난달 배럴당 50달러대로 상승해 석유류 가격을 8.4% 상승시켰다.
이에 따라 전체 물가를 얼마나 끌어올리는지를 나타내는 기여도를 보면 석유류는 지난해 상반기 '마이너스'였다가 지난달에는 0.36%포인트(p)로 '플러스'를 나타냈다.
AI에 따른 계란 대란 여파도 1월 물가에 본격 반영됐다.
계란 대란은 지난해 12월부터 빚어졌지만 조사 기간과 겹치지 않아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적었다.
그러나 이달에는 61.9%나 뛰어 관련 통계가 작성된 1976년 이래 월별 상승률로는 최고를 찍었다.
무(113.0%↑), 당근(125.3%↑)도 1년 전과 견줘 2배 이상씩 뛰는 등 농·축·수산물 가격이 들썩인 점도 전체 물가를 끌어올렸다.
농·축·수산물 가격은 1년 전보다 8.5% 올라 전체 물가를 0.67%포인트 끌어올리는 효과를 냈다.
신선식품지수도 12.0%나 상승하면서 지난해 9월 이후 10%대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석유류 가격 상승은 교통, 공업제품 등 다른 물가지수에도 영향을 미쳤다.
대중교통 운임, 연료 가격 등이 포함된 교통 물가는 3.8%나 상승하면서 2012년 6월 4.2%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올랐고 공업제품 물가 역시 2014년 8월(2.1%) 이후 최대인 1.6%나 뛰었다.
식료품·비주류음료 물가도 5.3% 오르면서 2012년 4월(5.3%) 이후 가장 큰 폭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외에도 서민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보험서비스료(19.4%), 하수도료(11.8%) 등도 두 자릿수 상승률을 보이며 큰 폭으로 인상됐다.
가계 소득은 늘지 않고 오히려 빚만 쌓여가는데 이처럼 필수적인 석유류와 교통요금, 식료품 등의 가격이 급등하면서 서민 생활을 더 팍팍하게 만들고 있다.
경기기 좋지 않은 상황에서 물가가 오르면 가계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이는 다시 전반적인 내수 침체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상하게 된다.
한국은행의 '2017년 1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1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3.3으로 작년 12월보다 0.8포인트(p) 떨어지면서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3월(75.0) 이후 7년 10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 1년 간 소비자물가상승률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물가인식'은 2.7%로 전월대비 0.3%포인트 상승했고, 향후 1년 소비자물가상승률 전망을 나타내는 기대인플레이션율도 0.3%포인트 오른 2.8%로 집계됐다.
소비자들은 지난 1년 간 물가가 많이 올랐고 앞으로도 고공비행할 것으로 보고 있는 셈이다.
◇ 공급요인이 물가상승 견인…당분간 2% 전후 상승세 지속할 듯
정부는 최근 물가 상승이 지난해 저유가에 따른 기저효과에다가 AI와 같은 공급측면의 일시적 요인에 따른 것인 만큼 급등세가 곧 진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공급측면의 일시적 변동요인을 제외한 농산물및석유류제외지수(근원물가지수)는 1월 1.5% 상승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근원물가인 식료품및에너지제외지수는 1.7% 올라 전체 소비자물가에 비해 상승폭이 작았다.
기획재정부는 이날 소비자물가동향 발표 직후 배포한 분석자료에서 "1월 물가 상승은 지난해 석유류 등 에너지가격 하락에 따른 기저효과 등 특이요인이 크게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 진단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 물가 상승세는 경기 활성화에 따른 수요 증가에 의한 것이 아닌 만큼 인플레 우려는 크지 않다는 것이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경기가 좋아져서 수요가 많아 물가가 올라간 게 아니라 유가 등 공급차질 때문에 오른 것"이라며 "아직 수요 측면에서 인플레이션 압력은 높지 않다"고 진단했다.
김천구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그동안 근원물가지수보다 소비자물가지수가 계속 낮았는데 이번에 역전됐다"면서 "농산물과 석유류 등 공급측 요인이 물가 상승을 견인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물가 급등세가 지속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 연구위원은 "앞으로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석유류 등의 물가 상승압력은 상존하겠지만 수요측면의 압력이 높지 않아 물가가 단기간에 급등할 것 같지는 않다"고 예상했다.
이 수석연구위원은 "농산물이나 유가 안정화가 이뤄지는 등 공급충격이 계속되기는 어려운데다 소비나 내수경기가 더 좋이지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면서 "물가 상승률이 1분기까지는 2%를 유지하다가 2분기에 1%대로 다시 내려가 안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기재부 역시 "국제유가 흐름을 감안하면 향후 소비자물가는 에너지 가격 기저효과 축소에 따른 단기 하향 조정을 거친 뒤 1%대 후반 수준을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는 다만 기상여건 악화, 석유수출국기구(OPEC) 감산합의 이행상황 등에 따라 물가 상하방 요인이 혼재하는 만큼 매주 물가관계차관회의를 열어 물가안정대책 추진상황을 지속 점검할 방침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농축산물 등 주요품목의 가격안정노력을 강화하고 소비자단체와 함께 가공식품 등의 불합리한 편승인상을 억제하겠다"고 밝혔다.
pdhis9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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