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산업팀 =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보호무역 강화에 이어 이번에는 환율조작국 카드를 꺼내 들면서 한국 기업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제1 타깃으로 삼은 중국, 일본, 독일에 이어 한국도 영향권에 들 수 있는 데다, 미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내려가면서 이제 막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우리 수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때문이다.
◇ 車ㆍ반도체ㆍ정유, 환율하락땐 타격
2일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환율조작국 지정 가능성이 커지자 자동차, 철강 등 주력 수출업종은 환율 변동을 예의주시하며 대응방안을 찾는 데 비상이 걸렸다.
자동차 업계는 트럼프의 환율조작 비판이 중국, 일본, 독일에 그치지 않고 한국까지 포함할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움직임으로 달러화가 전반적으로 약세를 보이는 가운데 환율조작 비판으로 원·달러 환율이 더 하락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모습이다.
일반적으로 원·달러 환율이 하락하면 수출 기업의 가격경쟁력과 수익성에 악영향을 미치고 환율이 상승하면 그 반대다.
환율이 10원 하락하면 국내 완성차 5사의 연간 수출 매출액이 약 4천억원 감소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현대·기아차[000270]는 미국 수출 비중이 높아 환율이 큰 폭으로 하락할 경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지난해 현대차[005380]는 전체 수출의 33.2%인 33만5천762대, 기아차는 전체 수출의 30.6%인 33만2천470대를 미국에 팔았다.
앨라배마와 조지아주(州)에 각각 공장을 지어 현지 생산 비중을 늘려왔지만, 여전히 판매의 상당 부분은 한국에서 수출한 물량이다.
환율 하락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원가 경쟁력 강화와 현지 생산 확대 등이 있지만, 그 어느 하나 단기간에 쉽게 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환율이 하락할 가능성이 최근 커진 것으로 보고 수출시장 점검과 수익성 제고 등 대응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환율 하락세가 이어진다면 효자품목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의 수출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삼성전자[005930]는 지난해 4분기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부품 사업을 중심으로 전 분기 대비 약 3천억원의 환율 효과를 본 것으로 추산했다.
LG디스플레이[034220]도 "달러가 10원 상승하면 월 80억원의 플러스 효과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부품은 달러로 거래가 이뤄져 원·달러 환율이 내리면 원화로 산출한 매출 역시 감소한다.
환율의 영향을 많이 받는 정유업계 역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원유 도입은 물론 생산품의 70% 이상을 달러화를 기반으로 거래하는 구조"라며 "환율이 하락하면 수출 경쟁력이 감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철강업계는 일부 국가의 환율에 대한 트럼프의 불신이 관세보복이나 수입제한과 같은 조치로 이어질 여파를 우려한다.
미국은 지난해 한국산 철강제품에 대해 최고 60%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한 상태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하반기에 개시되는 도금, 냉연, 열연 제품의 연례 재심에서 관세율을 낮추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철강제품 수출에 미칠 타격을 최소화하고자 고부가가치 제품을 바탕으로 한 판매 확대 전략을 더욱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조선ㆍ車 "日만 환율조작국 지정땐 반사이익"
하지만 우울한 전망만 있는 건 아니다.
자동차의 경우 수출 경쟁국인 일본만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반사이익을 누릴 수도 있다.
특히 엔화가 강세로 돌아서면 현대·기아차의 주요 경쟁사인 도요타와 혼다, 닛산 등 일본 업체가 가격경쟁력과 수익성에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업종도 일본과 글로벌 수주 경쟁을 해야 하는 입장인 만큼 일본의 환율조작국 지정이 장기적으론 우리에게 유리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선업은 평소 환 헤지 해두기 때문에 환율 변동에 따른 영향 역시 크지 않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일본 조선이 2015년쯤 엔저를 무기로 수주를 많이 하곤 했으므로 한국에는 긍정적일 수 있다"면서 "다만 문제는 지금 엔저 때문에 우리가 수주를 못 하는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자업계에 미치는 영향도 복합적이다. 스마트폰, 가전 등 완제품은 해외 현지 생산과 판매로 운영되고 현지 통화로 결제되기 때문에 환율 하락에 큰 영향을 없을 것이란 목소리도 있다.
원·달러 환율보다는 현지 통화가 달러화 대비 어떻게 움직이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삼성·LG전자는 결제 통화를 다변화해 환율 변동에 대응하고 있다.
◇ 정부 "외환 비개입…환율조작국 지정 안될 것"
정부는 상황을 미국 쪽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면서 우리나라가 환율조작국에 지정되지 않도록 하는데 역량을 모으고 있다.
미국 재무부는 대미 무역수지(200억 달러), 경상수지(국내총생산(GDP) 대비 +3%), 외환시장 개입(GDP 대비 +2%) 등 3개 기준을 모두 충족할 경우 환율조작국으로, 2개 기준을 초과한 경우 관찰대상국으로 지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대미 무역수지와 경상수지 요건에 해당하면서 관찰대상국으로 지정된 상태다.
외환시장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이 마지막 보루인 셈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아직 트럼프 대통령이 구체적인 조치에 나서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우리나라가 환율조작국에 포함된다면 수출엔 마이너스 요인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최근 수출 동향이 환율보다는 세계 경제나 교역에 더 크게 연동하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특히 주요 수출 품목이 대부분 달러로 거래돼서 개별 기업의 영업이익에는 영향을 미칠 수 있으나 수출 자체는 큰 변동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중소기업 위주의 섬유, 기계는 가격으로 경쟁하는 부분 많아서 원화가치가 오르면 수출이 줄 수밖에 없다.
당장 정부가 나설 여지는 많지 않다.
산업부 관계자는 "환율은 시장에서 결정하는 것이며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다는 게 기본 입장이고 우리나라가 환율조작국 기준에 걸리지 않는 것 또한 정부가 개입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며 "다만 통상 쪽에서 우리의 이런 노력을 미국에 잘 설명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26일 기자들과 만나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기준이 3가지 있는데 우리는 2가지에만 걸리고 나머지 하나는 절대 하지 않고 있다"며 "미국이 정한 규칙대로 하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없다고 본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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