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印분쟁 직후 길잃고 인도서 체포…中 귀향 주선
(상하이=연합뉴스) 정주호 특파원 = 1960년대 인도 국경으로 잘못 넘어갔다 50여년간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중국인 노병의 사연이 춘제(春節·설) 연휴중인 중국인들을 애잔하게 만들고 있다.
중국 환구망 등은 2일 BBC 보도를 인용해 1963년 중국군 인도접경부대 소속의 측량병 왕치(王琪)가 중국·인도간 국경분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길을 잃고 인도 영토로 들어갔다가 인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현재 나이 80세에 이르는 그는 인도 유랑생활 54년이 되도록 여전히 인도 당국의 출국 승인을 받지 못한채 애타게 고향에 돌아가 가족들과 만날 방법을 찾고 있는 중이다.
산시(陝西)성 출신의 그는 1960년 토지 측량기사 자격으로 중국군에 입대해 인도접경지역에서 복무하다가 1963년 1월 산책 도중 길을 잃고 인도 영토로 잘못 들어갔다.
그는 "당시 부대 막사를 떠나 산책을 하던 중 길을 잃었다. 마침 적십자사 차량이 지나가자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뜻하지 않게 그들이 나를 인도군으로 넘겨버렸다"고 전했다.
당시 인도는 중국과의 국경분쟁으로 1962년 10∼11월 군사적 충돌을 벌인 끝에 3천명이 숨지고 4천명이 포로로 잡히며 중국에 대한 감정이 극도로 악화된 때였다. 패전한 인도는 이후 중국의 티베트 침략을 묵인해야 했다.
결국 왕치는 무단 영토 침입죄로 6년간 수감된 뒤에야 법원의 석방 명령을 받고 풀려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인도 당국은 그를 중국으로 되돌려보내는 대신 국경에서 멀리 떨어진 인도 중서부의 궁벽한 마을로 데려갔다.
현재 인도 중서부 나그푸르시에서도 차로 5시간 걸리는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그는 "당시 매일 저녁을 울었다. 중국에 있는 가족들, 특히 어머니가 걱정됐다"고 말했다.
왕치는 이후 현지 밀가루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1975년 인도 여성과 결혼해 3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인도어도 배웠고 라제 바하두르라는 현지 이름도 얻었다.
그렇지만 인도 정부는 왕치에게 어떤 정식 신분증도 발급하지 않았다. 왕치가 전쟁포로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확정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의 모호한 신분이 귀향을 가로막는 요인이었던 셈이다.
왕치가 수십차례 고향에 편지를 보낸 끝에 1980년대에야 고향의 가족들이 편지를 받을 수 있었고 2002년에는 40여년간 그토록 그리워했던 어머니와 한차례 전화통화도 할 수 있었다. 그의 모친은 지난 2006년 숨을 거뒀다.
2009년 왕치의 외조카가 필요한 서류를 갖고 인도를 찾아와 중국대사관의 협조를 받은 끝에 그는 2014년에 중국 여권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왕치는 인도 정부의 출국 승인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중국 외교당국이 나서 적극적으로 왕치의 귀향을 주선하고 있다.
환구망은 인도주재 중국대사관이 왕치와 가족들의 만남을 위해 인도 당국과 긴밀하게 접촉 중이라고 전했다. 대사관측은 "중국과 인도 양측의 공동 노력으로 당사자 본인의 뜻을 존중한다는 전제하에 이번 일이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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