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개인·사회에 대한 분노, 엉뚱한 곳에 전치"
대검, 사회적 약자 대상 강력범죄 종합대책 마련
(전국종합=연합뉴스) '틀딱충'. '틀니가 딱딱거린다'를 줄인 뒤 '벌레 충'자를 불인 신조어로 노인을 조롱할 때 쓰는 신조어다. 이른바 '꼰대' 세대를 비난할 때 쓰는 표현이다.
노인 비하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나이 듦이 현명함을 뜻했던 과거와 비교하면 상황은 180도 바뀌었다.
고령화 사회 진입과 더불어 사회 분위기가 점차 각박해지면서 노인층이 비하의 대상을 넘어서 '화풀이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
"기분 나쁘게 쳐다봐서 때렸다."
대낮 길거리에서 할아버지뻘 되는 70대 노인을 무차별 폭행한 30대 여성이 경찰 조사에서 한 말이다.
노인에게 전치 4주의 상처를 입히고도 잘못했다는 말 한마디 없던 여성은 경찰에서 묵비권을 행사한 채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외 다른 진술을 하지 않았다.
지난해 6월 3일 오후 김모(31·여)씨는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한 교차로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려다가, 운동 중이던 안모(71)씨와 눈이 마주쳤다.
안씨는 출생신고가 늦어져 실제론 당시 78세였다.
김씨는 갑자기 안씨에게 "너 이×× 뭐야"라며 다짜고짜 발길질을 퍼부었다.
봉변에 당황해하던 안씨에게 김씨는 계속해 주먹을 날렸고, 하이힐로 걷어차기도 했다.
얼굴과 가슴을 주먹으로 맞은 안씨는 "도대체 왜 그러냐"고 물었지만 김씨는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다.
주변을 지나다가 "무슨 일이냐"며 말리던 다른 여성들도 김씨에게 수차례 폭행당했다.
경찰은 김씨가 사업실패를 겪으면서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다가 별다른 이유 없이 범행한 것으로 추정했다. 김씨는 지난해 9월 열린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4월 21일 오전 충북 청주시 흥덕구의 한 주택가에선 동네를 산책하던 이모(64)씨가 영문도 모른 채 봉변을 당했다. 길을 가던 강모(24)씨가 갑자기 달려들더니 발길질과 주먹세례를 퍼부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귀가 찢어지는 등 심하게 다쳤다.
TV에서나 봤던 이른바 '묻지 마 범죄'의 피해자가 된 이씨는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아 외출 자체를 꺼리게 됐다.
이씨는 "백주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며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온몸이 벌벌 떨린다"고 힘겨워했다.
일용노동자인 윤모(57)씨는 지난해 8월 26일 오전 5시께 전북 전주시 덕진구의 한 공원 놀이터에서 "혹시 휴대전화를 보지 못했냐"고 묻던 이모(72·여)씨를 낫으로 위협하고 멱살을 잡아끌고 갔다가 재판에 넘겨졌다.
윤씨는 특수폭행과 폭행 혐의로 1심에서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 보호관찰을 선고받았다.
이처럼 노인 상대 범죄가 횡행하는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개인이 다른 사람이나 사회에 대한 분노를 엉뚱한 곳에 전치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제압 가능한 약자를 대상으로 하는 특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분노를 기반으로 한 피의자는 자신이 접근 가능한 방어력이 약한 노인과 여성 등 이른바 '만만한' 사람을 범행 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라고 설명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자신이 제압 가능한 약한 상대를 대상으로 자신의 분노 감정을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며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뚜렷한 직업이 없고, 가정생활도 불행한 취약한 구성원이 갈등과 스트레스로 인한 분노를 공격 성향으로 표출해내곤 한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도 "이런 범죄 피의자 중에는 피해의식이나 열패감을 가진 경우가 많고 사회에 대한 불만, 스트레스를 강자에게는 풀지 못하고 노인 등 약자에게 화풀이 형태로 풀어낸다"고 분석했다.
대검찰청은 지난해 7월 이런 사회적 약자를 상대로 한 혐오범죄 근절을 위해 '사회적 약자 대상 강력범죄 종합대책'을 마련해 발표했다.
대검은 "주취 상태에서 노인과 아동, 여성,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피해자가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는데도 특별한 동기 없이 폭행해 전치 4주 이상의 상해를 입힌 자는 원칙적으로 구속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최해민 강영훈 김형우 김동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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