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부산 소녀상 설치 등을 둘러싸고 한일관계가 악화 일로를 걷는 가운데 전철역에서 일본인을 구하려다 숨진 '의인' 이수현 씨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일본 극장에서 관객들을 만난다.
생전 "한국과 일본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던 고인의 바람처럼 꽁꽁 얼어붙은 두 나라가 갈등을 극복하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2일 도쿄신문 등에 따르면 이수현 씨의 죽음 이후 부모님과 친구들 등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 '가교(懸橋·かけはし)'가 일본 도쿄(東京) 시부야(澁谷)의 극장 '업링크'에서 4일부터 17일까지 상영된다.
이수현 씨는 26살이던 지난 2001년 겨울 일본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중 도쿄의 신오쿠보(新大久保) 역에서 술에 취해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다가 전동차에 치여 숨졌다. 이 씨의 죽음은 당시 일본 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이는 일본 내 한류 열풍의 불을 지피는 역할을 했다.
영화는 지인들의 목소리를 통해 고인의 생전 모습을 들려주고 자식을 잃은 뒤 고인 부모들의 삶을 돌아보는 한편 '이수현 장학금'을 받는 학생들의 생활도 소개한다.
사고 후 고인의 부모는 일본에서 들어온 위로금 등 1천만 엔(약 1억200만원)을 아들처럼 일본어 학교에서 공부하는 아시아의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장학기금으로 내놨다.
감독의 카메라는 이 씨의 흔적을 찾는 여행을 하려 일본을 찾은 한국인 학생들도 따라간다. 학생들이 일본인들과 마주앉아 역사 문제 등에서 서로 속마음을 보여주는 자리도 있다.
영화를 만든 나카무라 슈토 씨는 "한일 양국에서 서로 비난을 부채질하는 움직임이 있다"며 "두 나라 모두 옥신각신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카메라를 대보면 다른 얼굴이 나온다. (두 나라의 관계를) 흥분하지 않고 냉정하게 생각할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인의 부친 이성대(77) 씨는 "아들은 인간애에서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려 한) 행동을 했다. 한일관계가 덜컹거리고 있어서 마음이 아프다"며 "영화가 두 나라 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제작사 측은 일단 단일 영화관에서 상영한 뒤 영화 상영을 희망하는 사람들을 모집해 전국에서 순회 상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bkkim@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