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고은 시인 "블랙리스트, 슬퍼"…"촛불집회, 하나의 예술"

입력 2017-02-03 22:31  

[인터뷰] 고은 시인 "블랙리스트, 슬퍼"…"촛불집회, 하나의 예술"

국제시인상 수상차 로마 방문…"아직도 할 일·쓸 것 너무 많아"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내 나라 정부가 예술가를 지원금으로 길들인다는 발상을 했다는 데 한마디로 슬플 따름입니다."

고은(84) 시인이 이탈리아의 권위 있는 단체인 로마재단이 주는 국제시인상 수상차 로마를 찾았다.

3일 시상식에 앞서 시인을 미리 만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와 최순실 씨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된 고영태 씨의 비극적 가족사가 '만인보'에 수록된 사연 등으로 최근 뜻하지 않게 언론 보도에 자주 이름이 거론된 것에 대한 소회와 수상 소감, 근황 등을 물었다.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노시인은 현재 특검이 수사 중인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것에 대해 "한마디로 슬프다"고 했다.

연말 연초를 뜨겁게 달군 촛불집회에 대해서는 "스스로 처한 삶을 바꿔야 한다는 시민들의 순수한 개혁 의지에서 비롯된 하나의 예술"이라고 평가하며 "뜻밖의 추문이 우리 역사에 각성의 계기를 만들어줬다"고 말했다.

여든을 훌쩍 넘겼지만 여전히 왕성한 지적 호기심으로 읽기와 쓰기를 멈추지 않고 있는 그는 "아직도 할 일이 너무 많고, 써야 할 것도 많다"며 "시상식에서 박수받는 것도 좋지만 나로서는 이런 건 '화려한 소비'라 외유는 조금씩 줄이려 한다"며 창작에 대한 변치 않는 열정도 드러냈다.





다음은 고 시인과의 일문일답.

--'블랙리스트' 등 뜻하지 않게 최근 작품 외적인 일로 주목을 많이 받았다.

▲내 나라 정부가 예술가를 지원금 몇 푼으로 길들인다는 발생을 한다는 게 참 슬프다. 사실, 남북겨레말큰사전이라는 과업 완성을 위해 최근 몇 년 동안 (튀지 않고) 조심스럽게 살아왔다. (그는 2005년부터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위원회 의장을 맡고 있다) 주변 지인들로부터 요즘 너무 현실과 타협하는 게 아니냐는 농담 섞인 비판도 종종 받았는데, 나도 리스트에 들어있다고 하니 의아하기도 했다.

--최근에 촛불집회를 주제로 한 시도 발표했는데.

▲함부로 움직일 처지도 아니고, 촛불집회는 순수한 젊은 사람들에게 맡기자는 생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다 작년 마지막 날 아내와 함께 딱 한 번 가봤는데, 팔이 데일 정도로 뜨거웠다. 시민들이 자신의 삶을 바꿔야겠다는 순수한 개혁 의지가 느껴졌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하나의 예술이었다. 뜻밖의 스캔들이 우리 역사에 각성의 계기로 작용했다. 그동안 세계사에서 없던 이런 일을 살아있는 동안 목격한 것은 커다란 영광이다. 독일 같은 곳에서는 촛불 혁명을 민주주의의 교과서로 삼아야 한다고 격찬하기도 했다. 이런 격찬이 꽃이라면, 이제 열매를 맺어야 할 텐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프랑스 혁명 때에도 난데없이 나폴레옹이 나와서 혁명의 과실을 먹어버린 전례가 있다.

--30권짜리 연작시집인 대표작 '만인보'에 고영태 씨의 가족사가 들어있어 화제가 됐다.

▲'만인보'는 역사의 폭압 속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애도하고, 그들의 삶을 재현하기 위한 사명감으로 쓴 시집이다.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사망한 희생자들의 유족들을 취재해서 쓴 시들이 몇 편 있는데, 이 시들 중의 한편이 고영태 씨 가족 이야기라고 해 나도 깜짝 놀랐다. 하지만 애초에 그 가족과 특별한 인연이 있어서 쓴 것은 아니다. '네티즌 수사대'라는 말도 있듯이 고영태 씨가 한 말을 단서로 만인보 속에서 그의 가족사를 발견해 낸 사람들이 대단하다. ('만인보' 속에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군인들의 총에 맞아 숨진 고 씨의 아버지와 홀로 5남매를 키워낸 고 씨의 어머니, 아시안게임 펜싱 금메달을 딴 고 씨의 이야기로 구성된 작품이 들어있다)

--해외에서 워낙 상을 많이 받아 상에 대한 특별한 감흥은 없을 듯 싶다.

▲천진해서 그런지 상을 받을 때는 늘 설렘이 있다. 첫 시집을 냈을 때 만큼은 아니지만 매번 새 시집이 나올 때마다 새로 태어난 것과 같은 기분이 드는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

--작년에 신작 시집 '초혼'을 선보이는 등 아직도 시를 놓지 않고 있다. 평소 작업은 어떻게 하나.

▲오래 전에는 사람들과 짐승들, 꽃도 모두 잠든 시간에 시를 썼다. 나 혼자 깨어 있다는 고독한 영광이 있었다. 지금은 일상의 시간을 시 쓰는 시간으로 정해 오전과 오후에 주로 쓰고, 밤에는 책을 읽는다. 우리나라 출판계가 요즘 열악하다고 하지만 사실 좋은 책이 정말 많이 나온다. 끊임없이 세계의 메시지를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에 낮에는 작가, 밤에는 독자가 된다. 최근 들어서는 탄핵 정국 관련 뉴스를 열심히 보느라 독서량이 많이 줄었다. 이제 다시 독서로 돌아가려 한다.

--올해 계획은.

▲할 일이 너무 많다. 남북 관계 경색으로 북쪽 상대를 만날 수가 없어 남북겨레말큰사전 편찬이 답보 상태인데, 일단 올해 안으로 웹사전이라도 먼저 완성하려 한다. 또, 지금 쓰고 있는 작품도 마무리를 지어야 하고, 새로운 작품도 이어서 써야 한다. 해외 문학 행사 등 갈 데도 많지만 이제 외유는 조금씩 줄이려 한다. 한번 나갔다 오면 집필 시간이 없어져 버린다. 이번 시상식 같은 박수받는 행사는 나로서는 '화려한 소비'다.







ykhyun14@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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