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시인 최초로 로마재단 수여 국제상 수상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시 세월 60년을 채우고 있지만 시인이 되면 될수록 시인은 자신의 뒷모습을 모르는 것처럼 시를 모르게 됩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인 고은 시인이 3일 서양 전통시의 발상지로 꼽히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이탈리아의 대표적 문화 재단 중 한 곳인 로마재단이 주는 국제시인상을 수상했다.
2006년 이래 매년 '시의 초상'(肖像)이라는 국제 시 축제를 열고 있는 로마재단은 2014년부터 국제시인상을 제정해 세계적인 시인을 시상하고 있다.
고 시인은 아담 자가예프스키(폴란드), 하코보 코르티네스(스페인), 캐롤 앤 더피(영국)에 이어 네 번째이자 아시아 시인으로는 최초의 수상자가 됐다.
2000년대 들어 해외 문학계에서 집중 조명을 받아온 고 시인의 작품 가운데 이탈리아에는 '순간의 꽃'(Fiori d'un Istante), '노래섬'( L'isola che canta), '뭐냐'(Cos'e') 등 세 권의 시집이 번역 소개돼 있다.
그는 2013년 베네치아 카포스카리대학의 명예교수로 임명되고, 이듬해는 이탈리아 문학상인 노르드수드상을 수상한 데 이어 2015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밀라노의 권위 있는 학회 암브로시아나 아카데미의 정회원으로 임명되는 등 이탈리아에서 갈수록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다.
이탈리아로 번역된 고 시인의 시집 3권 모두를 옮긴 빈첸차 두르소 이탈리아 카포스카리대학 한국어과 교수는 "시인의 쉬우면서도 강렬한 메시지를 담은 시의 울림이 이탈리아인들에게 잘 수용되고 있다"며 "오늘 시상식에서도 이탈리아 각지에 있는 선생의 팬 상당수가 몇 시간의 이동 시간을 마다치 않고 참석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탈리아인들도 더 이상 이탈리아 시인들의 시를 읽지 않는 시대에 서양의 대표적인 시 양식 소네트의 탄생지인 이곳에서 고은 시인이 상을 받는 것은 한국 시와 한국 문학의 성취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날 아드리아노 신전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주최 측은 고 시인을 "한국어로 시를 쓰는 위대한 시인"이라며 "현대사의 질곡을 온몸으로 통과한 그는 강렬한 삶의 궤적과 섬세한 감수성으로 삶과 우주를 노래한다"고 소개했다.
고 시인은 상을 받은 직후 로마 독자 2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한 기념 연설에서 한국어가 억압받던 일제 식민지 시대를 거쳐 해방이 되며 시의 세계로 들어선 일 등 자신의 삶과 시, 모국어에 대한 철학 등을 시적 언어로 담담히 풀어냈다.
그는 "시 세월 60년을 채우고 있지만 시인이 되면 될수록 시인은 자신의 뒷모습을 모르는 것처럼 시를 모르게 됩니다. 다만 나에게는 노래하는 자와 노래를 듣는 자의 실재 사이에서 영혼의 대칭이 이루어지는 체험만 있을 뿐"이라고 말하며 자전적인 시 '어느 전기'를 낭독하는 것으로 자리를 마무리했다.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한 삶의 나비로 태어났다/빛 앞에서 아주 작은 눈이 떴다/…/낮은 식민지/밤은 나의 조국이었다/그런 밤에 금지된 모국어가 아무도 몰래 내 잠든 몸 속에서 두런거렸다//해방이 왔다/모국어가 찬란했다//전쟁이 왔다/폐허에서/폐허의 주검 사이에서 피묻은 모국어가 살아남았다/그 모국어로 노래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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