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혼, 결혼생활이 지긋지긋한 중년들의 탈출구

입력 2017-02-06 08:40  

졸혼, 결혼생활이 지긋지긋한 중년들의 탈출구

스기야마 유미코 에세이 '졸혼 시대'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탤런트 백일섭(73)이 지난해 TV에 나와 졸혼(卒婚)을 선언해 화제가 됐다. 졸혼은 결혼에서 졸업한다는 뜻이다. 법적 혼인관계를 유지하고 서로 존중하지만 간섭하지 않고 독립적인 생활을 꾸려간다. 황혼이혼의 파국을 막는 차선책을 넘어, 부부간 역할을 재정립해 제2의 인생을 꾸미는 출발점으로도 여겨진다.

일본에 졸혼이라는 용어를 유행시킨 에세이스트 스기야마 유미코(杉山由美子)의 '졸혼 시대'(원제 '졸혼을 권함')가 우리말로 번역돼 나왔다. 저자는 40대 때 남편과 갈등을 빚던 중 딸의 권유로 따로 살아본 경험과 함께, 성공적 졸혼생활을 하는 부부들을 인터뷰해 소개했다.

히로오카씨 부부는 우연한 기회에 졸혼생활을 시작한 경우다. 주오대 교수인 남편이 서른여덟 살 때 중국에 단기간 부임하면서 반강제로 졸혼했다. 전업주부였던 부인은 다섯 자녀를 키우며 심신이 피폐해진 상태였다. 따로 사는 생활은 양쪽 모두에게 활력소가 됐다. 외롭지만 간섭받지 않는 자유가 찾아왔다. 부인은 수험용 교재를 만드는 일도 시작했다. 결혼 이후 자신의 일은 처음이었다.

3년 뒤에는 자발적으로 졸혼했다. 남편의 어머니가 거동이 불편해지자 부인이 병수발을 위해 세 아이를 데리고 도쿄에서 가나자와로 거처를 옮겼다. 첫째와 둘째는 아버지와 함께 도쿄에 남았다. 아내는 가나자와에서 공연기획을 했고 지역 네트워크를 발판삼아 현의원에 당선됐다. 서로 다른 지역에 기반을 잡고 수입도 대등해지니 남편의 권위적 성향도 줄었다고 부부는 전했다.




하나리씨 부부는 졸혼과 함께 생활방식은 물론 부부의 고정적 역할도 바꿨다. 남편은 기계설계 사업을 하며 일밖에 모르고 살았다. 그러는 사이 부인은 시부모를 간병을 도맡았고 '간병의 달인'이라는 책까지 냈다. 환갑을 앞두고 회사 문을 닫은 남편은 산 속 오두막에 들어가 취미삼아 물건을 만들며 지낸다. 따로 여행하고 지하철을 타도 붙어앉지 않는다는 부부의 생계는 부인 몫이다. 강연·집필료가 수입의 전부다. 과자 대신 식빵 귀퉁이에 설탕을 묻혀 먹으며 검소하게 산다고.

요리 연구가 와키 마사요, 영상 디렉터 가토 슈지 부부는 결혼을 시작하면서 졸혼을 택한 특이한 경우다. 부인은 일을 계속하며 아이를 갖고 싶었다. 남편도 한쪽이 희생하거나 복종하는 결혼은 싫었다. 부부는 처음부터 따로 살았지만 첫 아이가 태어난 지 1년 만에 살림을 합쳤다.

졸혼에는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적 기반과 육아로부터 해방이 필수로 보인다. 권태를 겪는 젊은 부부들이 선뜻 졸혼을 택하지 못하는 이유다. 자유롭고는 싶지만 이혼의 멍에를 지긴 싫은 이들의 고령화 시대 대비책이기도 하다.

김정운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은 추천사에서 "졸혼은 100세 시대에 일부일처제가 유지될 수 있는 몇 개 안되는 대안 중 하나"라며 "'평생 추구하는 삶의 가치가 있는가', '가족이나 직장으로부터 자유로운 내 삶의 콘텐츠가 있느냐'에 관한 질문"이라고 말했다.

더퀘스트. 장은주 옮김. 240쪽. 1만5천원.

dad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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