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결정에 10일 집행…인권단체 이의신청·유럽인권재판소 탄원
(모스크바·서울=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김수진 기자 = 러시아에서 20년 가까이 도피 생활을 해온 탈북자가 북한으로 강제 송환될 위기에 몰렸다.
이는 최근 북한과 러시아가 작년에 체결한 조약에 따른 조치이지만 인권단체들은 압송으로 생사가 갈릴 수 있다며 구명운동에 나섰다.
4일(현지시간) 러시아 제2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온라인 신문 '폰탄카'에 따르면 해당 탈북자는 최명복이라는 노동자다.
그는 최근 현지 경찰에 체포됐고 러시아 법원은 그를 북한으로 돌려보내라는 판결을 내렸다.
최 씨는 러시아 극동 연해주의 노동 수용소에서 일을 해오다 1999년 도주해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동, 당국의 감시를 피해 생활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 당국은 북한과 맺은 '불법입국자와 불법체류자 수용과 송환에 관한 협정'에 따라 최 씨를 돌려보내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은 작년 2월 이 협정을 체결해 북한이 러시아에 도피 중인 탈북자들을 넘겨받을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이행 자체가 탈북자의 생사를 좌우할 수 있는 까닭에 이 협정은 체결될 당시부터 인권 논란이 있었다.
마르주키 다루스만 당시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망명을 시도하는 북한인이 체포돼 압송될 수 있다며 러시아에 조약을 이행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최씨 송환에 관한 법원의 결정은 오는 10일 집행될 예정으로 그는 현재 외국인 불법 체류자 수용소에 억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 인권단체는 최 씨의 북송을 막기 위한 작업에 돌입했다.
러시아 인권단체 '메모리알' 변호사는 최 씨가 지난 2일 러시아연방보안국(FSB)을 방문해 몇 가지 서류에 서명했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최 씨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FSB의 권유에 따라 스스로 권리를 포기하고 북한으로 돌아가겠다는 서류에 서명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메모리알은 최 씨의 송환을 막기 위해 항소를 추진하는 한편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유럽인권재판소(ECHR)에도 최 씨 보호 신청을 했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북송된 탈북자는 사형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벨평화상 후보로 거론되던 인권 운동가 스베틀라나 간누슈키나 시빅 어시스턴스 회장은 "북한과 러시아가 맺은 모든 조약은 도움을 청하러 우리에게 온 이들에 대한 범죄"라며 "구소련 시절처럼 우리가 그 사람들을 넘겨줘 고문과 죽음에 처하도록 하는 게 부끄럽다"고 최근 미국 '포린 폴리시' 인터뷰에서 말했다.
미국 국무부와 의회에 따르면 현재 북한 밖에서 강제 노동에 가까운 외화벌이를 하는 노동자는 5만∼6만명에 달한다.
특히 극동·시베리아 지역과 수도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러시아 전역에만 약 3만 명의 북한 노동자가 집중적으로 파견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 대다수는 열악한 환경에 노출돼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작년 11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축구경기장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북한 노동자가 추락해 숨지는 등 지난 한 해 러시아에서만 10여명의 북한 노동자가 사망했다.
이 중 일부는 최씨처럼 일터에서 도망쳐 러시아 당국에 망명신청을 하기도 하지만,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편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14년까지 탈북자 211명이 러시아 당국에 망명신청을 했다.
그러나 겨우 2명만 영구 망명을 허락받았고, 1년짜리 단기 망명이 받아들여진 경우도 90명에 그쳤다.
cjyo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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