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탄에 쓰러진 열일곱 여고생…'만인보'에 기록된 5·18헬기사격

입력 2017-02-06 09:49   수정 2017-02-06 09:59

총탄에 쓰러진 열일곱 여고생…'만인보'에 기록된 5·18헬기사격

(광주=연합뉴스) 정회성 기자 = 5·18민주화운동 당시 군 헬기에서 쏜 총탄에 살해당한 여고생과 그 가족의 사연을 기록한 고은 시인의 '만인보'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고은 시인은 '만인보 단상 3689' 편에서 계엄군 총상으로 숨진 여고생 박금희(당시 17세)양의 죽음을 다뤘다.






6일 5·18민주유공자유족회 등에 따르면 박양은 1980년 5월 21일 피 흘리며 숨져가는 시민을 위해 광주기독병원에서 헌혈하고 집으로 돌아가다 동구 금남로 수미다실 앞에서 총탄에 배를 맞고 숨졌다.

4남 4녀 가운데 막내딸이었던 박양의 시신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쓰레기차에 실려 갔다가 훗날 망월묘지(현 광주시립묘지)에서 국립 5·18민주묘지로 옮겨졌다.

고은 시인은 박양의 죽음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양림동 건너가는 양림다리 다급한 호소였다 / (…) / 사람이 죽어갑니다 / 피를 나눠주세요 / (…) / 아저씨 / 아주머니 / 저도 함께 가겠어요 / 전남여상 3학년 여고생 박금희 / (…) / 기독교병원 헌혈하고 돌아오는 길 / 탕 탕 탕 / 헬기에서 쏜 / 총 맞아 / 거리에 피 다 쏟아버렸다 / (…) / 붉은 길바닥 고꾸라져 / 열일곱의 이승 마쳤다 / (…) / 박금희를 / 김금희로 잘못 쓴 베니이관 속에 누워 / (…) / 시청 청소차에 실려 가 / (…) / 흙구덩이 파 집어던졌다 / 김금희 아닌 박금희 집어넣었다"

시인은 딸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지 못한 박양 부모와 남겨진 가족을 '만인보 단상 3690 그 가족' 편에서 이렇게 묘사했다.

"광주시 납작집들 농성동거리 / 아버지 박병민 / 어머니 문귀덕 / 그리고 오빠 / (…) / 이렇게 우르르 모여들어 행복한 가족 / (…) / 웃음 없다 누가 웃으면 등 돌렸다 / (…) / 내 무덤에도 못 오게 막는 것 봐 / 안기부가 막아 / 경찰이 막아 / 벌써 두 달이 지나 / (…) / 7월 17일 / 생일상 대신 / 제사상 받았다 / (…) / 다음해 1981년 7월 17일 밤 / 새옷 한 벌 / 내 무덤에 놓여 / 밤이슬에 젖었다 행복은 곧 불행이었다"

헬기에서 '탕 탕 탕' 쏟아진 총탄에 희생된 것으로 기록된 박양의 죽음은 37년이 흐른 뒤에야 실체적 진실이 드러났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지난달 발표한 광주 금남로 전일빌딩 탄흔 분석 보고서에서 "헬기사격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인용했다.

국과수 보고서는 5·18 당시 군 헬기사격을 사실상 인정한 최초의 정부 기록이다.

hs@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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