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검은색 한 가지로 칠하고 억압할 수 없다"

입력 2017-02-06 18:26  

"시인은 검은색 한 가지로 칠하고 억압할 수 없다"

블랙리스트 시인 99명 시집 '검은 시의 목록'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그들은 <서정시>라는 파일 속에 그를 가두었다/ 서정시마저 불온한 것으로 믿으려 했기에// (…)// 그들이 두려워한 것은/ 그가 사람의 마음을 열 수 있는 말을 가졌다는 것/ 마음의 뿌리를 돌보며 살았다는 것/ 자물쇠 고치는 노역에도/ 시 쓰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는 것" (나희덕 '파일명 <서정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시인들이 시집 '검은 시의 목록'(걷는사람)을 펴냈다. 99명이 한 편씩 내고 안도현 시인이 엮었다.

신경림·이시영·송경동·백무산·황규관 등 저항·민중시를 주로 써온 시인들이 눈에 띄지만 작품들이 반드시 블랙리스트나 국정농단 사태에 직접 목소리를 내는 건 아니다.

"304명 넋들을 천 길 바다 속으로 끌고 들어간 '세이렌의 노래'를 누가 불렀는가"(김준태 'Requiem, 세월호')라며 분노하다가도 "배가 더 나오고/ 무릎 관절에도 나쁘고/ 발목이 더 굵어지고 종아리가 미워진다면/ 얼마나 더 싫을까/ 나는 얼마나 더 힘들까"(황인숙 '내 삶의 예쁜 종아리')라며 오르막 같은 삶을 돌아본다.

시집에는 시인 각자의 개성이 잘 드러나는 작품들을 모았다. '반체제 문화예술인'으로 낙인찍힌 이들이 사실은 얼마나 다양한 시선으로 아름다운 시들을 써왔는지 알리기 위해서다. 제목 '검은 시의 목록'은 그래서 역설적이다.

안도현 시인은 시집 맨 앞에 "누군가는 이들을 검은색 한 가지로 칠하려 했지만, 시인은 그리고 인간은 한 가지 색으로 칠하고 억압할 수 없다"며 "이들을 블랙리스트가 아니라 무지개리스트라고 부르는 게 옳겠다는 생각도 든다"고 썼다.

시인들은 시집 출간을 기념해 11일 오후 2시 연극인들이 광화문광장에 세운 '광장극장 블랙텐트'에서 낭송회를 연다. 도종환·함민복·정우영·안상학·천수호·유병록·권민경·최지인 시인 등이 참여한다.


dad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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