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존슨 '원더랜드' 출간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지난 시대보다 이 시대에 분명 멍청이들이 더 많다. 바보가 아니고서야 겉치레에 이렇게 집착할 리가 없다."
'로빈슨 크루소'로 알려진 영국 소설가 대니얼 디포는 1727년 런던의 상점들이 인테리어에 공을 들이는 모습을 보면서 개탄했다.
디포로부터 손가락질받았던 상점 주인들은 '원더랜드'(프런티어 펴냄) 저자인 미국의 과학저술가 스티븐 존슨이 보기엔 근대 산업혁명을 촉발한 주역이었다. 그는 호화로운 상점의 등장과 면직물 광풍을 연결지어서 설명한다.
17세기 말부터 들어선 고급 상점들은 사고팔 것이 있어야 장으로 향하던 사람들이 뚜렷한 목적 없이도 가게를 찾게 만들었다. '아이 쇼핑'족의 등장인 셈이다. 이때 상점들이 진열한 품목 중에는 면직물도 있었다. 1498년 바스쿠 다가마가 유럽에 처음 소개한 면직물은 2세기 가까이 대중적으로 유통되지 못했지만, 고급 상점의 등장으로 상황이 변했다. 숙녀들은 옥양목(면직물의 하나)에 마음을 빼앗겼고, 면직물은 유행이 됐다. 면직물 무역이 돈이 된다는 걸 알아차린 사람들은 방적기 등을 잇달아 발명했다. 근대 산업혁명은 그렇게 시작됐다.
존슨이 당시 유럽의 풍경을 소상히 전하는 까닭은 인류 역사의 혁신이 획기적인 아이디어나 기술을 찾는 노력이 아니라 사소해 보이는 놀이에서 비롯됐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다.
기원전 3만3천 년 전 동물의 뼈로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피리가 보여주듯이 새로운 대상에서 놀라움과 즐거움을 추구하는 건 인간의 본능이다. 자연에서 접하는 소음과 다른 피리 소리는 인간을 사로잡았을 것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색다른 사건을 접할 때 도파민이 분비되면서 뇌에서는 "주목하라, 흥미진진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경고가 발동된다.
사람들은 하찮거나 사소해보일지라도 즐거움을 주는 대상에서 가치를 찾는다. 이는 상업화 시도와 신기술 개발, 시장 개척으로 이어져 인류 역사를 바꿔놓는다. 저자는 혁신의 동력으로 흔히들 생각하는 자본 축적의 욕구보다 즐거움의 욕구가 더 강력하다고 강조한다.
책은 인류가 삶에서 누리는 사소한 즐거움이 혁신으로 이어진 다양한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평소 보지 못한 자줏빛 염료, 티리언 퍼플에 매료된 페니키아인들이 염료의 재료인 뮤렉스 달팽이를 찾아 미지의 대서양으로 진출하면서 발견한 항로는 인류의 탐험 역사에서 분수령이 됐다. 1700년대 유럽에 본격적으로 생겨난 카페는 막 형성되기 시작한 언론인들에게 사실상 사무실 역할을 했다. 18세기 중반 영혼의 세계에 관심이 많았던 독일 청년이 생각해낸 오락은 훗날 공포영화로 발전했다.
저자는 맺음말에서 "색다름은 낯설고,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기 마련"이라면서 "그러나 새로운 것들이 궁극적으로 지니게 될 중요한 의미를 과소평가하면 큰 손실을 보게 될 것"이라고 충고한다.
홍지수 옮김. 444쪽. 1만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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