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질 떨어지고 유산·우유 감소…소·돼지 묶어 접종하는 것도 곤욕"
당국 뒤늦게 접종 참관 추진에 농민 반발…"구제역 옮으면 책임질건가"
(청주=연합뉴스) 심규석 기자 = 정부가 내놓은 전국 소 사육농가의 항체 형성률은 평균 97.5%이다. 구제역을 차단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충북 보은의 젓소 사육농가와 전북 정읍의 한우 농가에서는 구제역이 발병했다, 뒤늦게 확인한 두 농장의 항체 형성률은 각 19%, 5%에 그쳤다.
소의 항체 형성률이 80% 미만일 경우 구제역 감염 가능성이 커지는데, 이들 농가는 기준치를 한참이나 밑도는 것이다.
축산 농민들은 백신을 매뉴얼대로 제때 놨는데 항체 형성률이 극히 낮은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방역 당국은 고기 품질이 떨어지거나 착유율·증체율 저하를 우려한 부실한 백신 접종 등 모럴해저드에 빠진 농가에 책임이 있다고 목소리를 키웠다.
구제역 백신 접종이 축산농가 입장에서 달가운 것은 아니다. 접종 방법이 까다로울 뿐만 아니라 염증으로 인한 이상육이 생겨 고기 품질이 떨어지면서 수익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에서다. 우유 생산량이 감소하는 피해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구제역 접종 매뉴얼에 따르면 백신은 2∼8도의 온도에서 냉장 보관해야 하고 접종 때는 백신 온도를 18도 안팎으로 올려 주사해야 한다.
접종 부위는 목 근육인데, 주사기가 피부와 직각을 유지해야 하며 바늘이 근육으로 완전히 들어가게 한 뒤 주사해야 한다.
바늘이 덜 들어가거나 비스듬하게 꽂혀서는 안 된다. 백신이 근육이 아닌 지방층에서 뭉칠 경우 항체가 극히 낮게 형성되거나 염증이 생겨 이상육이 생길 수도 있다.
규정대로 백신을 접종하는 것도 어려운데 현실은 더 복잡하다.
움직이지 못하도록 단단히 잡고 근육 부위에 천천히 주사한 후 충분히 문질러줘야 하는데 소나 돼지 역시 주사 맞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한다.
소·돼지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고정틀이 없는 축산 농가는 소·돼지를 밧줄로 묶어 못 움직이게 해야 하기 때문에 인부 없이는 백신 접종을 하는 게 사실상 어렵다.
소·돼지를 한 마리씩 접종하려면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수백, 수천마리씩 사육하는 축산 농가에는 큰 부담이다.
게다가 접종을 잘못해 이상육이 생기면 고깃값이 떨어질 수 있고 착유량도 줄어든다고 한다. 사룟값에 비해 살이 덜 찌는 현상이 나타나는가 하면 새끼를 밴 소·돼지가 유산한다는 소문까지 있다.
농장주가 백신 접종을 꺼리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일 것으로 축산 방역당국은 분석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당국이 백신 접종을 일일이 대신해 주거나 현장에서 관리·감독하기는 어렵다.
소·돼지를 몇 마리씩 키우는 소규모 농가야 가축방역관이나 공수의사가 현장에서 접종해 주지만 소 50마리, 돼지 1천마리 이상 키우는 대규모 농가의 경우 접종 인력을 지원하는 게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읍·면·동 직원을 보내 접종이 제대로 이뤄지는지를 참관하는 방안을 검토하다가 인력 부족으로 포기한 지자체도 있다. 농장주들도 구제역 확산을 우려, 외부인 출입을 꺼리는 형편이다.
축산 방역 당국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백신 접종을 농장주에게 맡긴 뒤 나중에 백신 공병을 수거하며 접종 여부를 확인하는 것 외에는 없다.
방역 당국의 한 관계자는 "농장주들이 백신 접종을 기피한다고 해도 이들을 믿을 수밖에 없다"며 "항체 형성률을 점검하는 채혈 검사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백신을 놓지 않다가 출하 한 달 전 급하게 백신을 접종, 항체 형성률을 높이는 농장이 있다는 소문이 무성한 상황에서 인력 탓만 하다가는 구제역 확산을 막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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