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마리중 1마리 구제역 검사, 안전하면 199마리도 안전하다니"

입력 2017-02-07 15:48   수정 2017-02-07 21:47

"200마리중 1마리 구제역 검사, 안전하면 199마리도 안전하다니"

'못믿을 통계' 맹신하다 구제역 뒤통수…농가 해이도 심각

(세종=연합뉴스) 정열 정빛나 기자 = 구제역이 발생한 충북 보은과 전북 정읍 농가의 백신 항체 형성률이 상당히 낮은 것으로 확인돼 정부의 백신접종 관리 체계에 커다란 구멍이 있었음이 드러났다.

특히 현장에서 백신 접종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조차 확인이 안되는 상황에서 정확하지 않은 표본조사 결과만 맹신하다 허를 찔렸다.

여기에 농가들의 도덕적 해이까지 방역 구멍을 키운 것으로 확인돼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



◇ '못믿을 97.5%'…항체형성률 통계 맹신하다 허 찔려

7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전날 구제역 확진 판정이 내려진 전북 정읍 한우 농가에서 사육하던 소 20마리 가운데 단 한 마리만 항체가 형성돼 있었다.

살처분 과정에서 한 임의 검사 결과이기는 하지만 항체 형성률이 5%에 불과했다. 앞서 5일 구제역이 처음 발생한 충북 보은의 젖소농장 역시 항체 형성률은 20%에 그쳤다.

이는 방역 당국이 파악하고 있던 항체 형성률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당국이 파악한 지난해 12월 기준 전국 소 농가의 항체 형성률 평균은 97.5%였다. 작년 한 해 연간 항체 형성률도 95.6%라고 당국은 발표했다.

국제수역사무국(OIE)은 백신 접종을 하는 국가의 유병률(질병의 발병 건수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 기준을 80%로 잡고 있다. 80%가 넘으면 구제역을 백신으로 방어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당국의 발표대로 국내 소 항체 형성률이 97.5%로 사실상 100%에 가깝다면, 구제역 바이러스가 유입되더라도 방어가 가능하다는 추론이 나온다.

당국 역시 이런 배경에서 구제역 방어를 자신했지만, 결과적으로 이 통계 자체에 심각한 오류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 '소 1마리만 검사하면 끝?'…방역당국, 부랴부랴 손질나서

당국이 파악하고 있던 항체 형성률 평균치와 현장의 괴리가 큰 것은 허술한 검사와 집계 방식 때문이다.

농식품부의 설명을 종합하면 방역 당국은 매년 백신 접종 실태 및 항체 형성률을 조사하기 위해 표본조사를 한다.

소의 경우 국제수역사무국(OIE) 기준에 따라 전체 사육농가 수(9만6천농가) 대비 10%에 해당하는 9천500마리를 전국 시·도 단위별로 동일하게 나눠 표본을 선정하게 돼 있다. 농가 선정 방식은 지자체 재량에 맡긴다.

표본 대상 물량이 선정되면 각 지자체는 농가 1곳당 무작위 선정한 소 1마리의 항체 형성 여부를 검사한다. 이 1마리가 정상적으로 항체가 형성돼 있으면 해당 농가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간주돼 검사가 끝난다.

항체가 형성돼 있지 않으면 16마리를 추가로 검사를 한다.

문제는 전염병 검사를 하면서 농가 규모 등 여러 변수를 따지지 않고 오직 소 1마리를 기준으로 삼는 것 자체가 납득이 어려운 대목이다.

돼지의 경우, 처음부터 농가 1곳당 16마리씩 표본검사를 하고 있다.

이번에 구제역이 터진 충북 보은 농장 역시 사육마릿수가 195마리로 규모가 컸지만 단 한 번도 표본 농가로 선정된 적이 없었다. 전북 정읍은 2015년 소 1마리만 항체 검사를 받은 게 전부였다.

방역 당국도 이같은 조사 방식에 오류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부랴부랴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김경규 농식품부 식품산업정책실장은 "국내에서는 주로 돼지 농가에서 구제역이 발생했기 때문에 돼지 농장에 검사 물량이 더 많이 배정됐던 것은 사실"이라며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서 올해 표본 설계는 최소 농장 1곳당 5마리는 검사를 하도록 하는 등 개선을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 "나는 안걸리겠지"…농가 모럴해저드도 심각 수준

한번 걸리면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이 퍼지는 가축전염병 특성상 가장 중요한 건 역시 농장 단위의 철저한 방역이다.

특히 2010년부터 국내에서 구제역 백신 접종이 의무화됐다. 축종별로 다르지만, 소의 경우 생후 2개월에 한 번 접종한 뒤 그 후로부터 한 차례 더 백신 접종을 해야 한다. 이후 6~7개월 주기로 반복해 접종하게 돼 있다.

50마리 이하 소규모 농장은 공중수의사가 예방 접종을 하고 있지만, 50마리 이상 전업농가들은 자체적으로 가축에 백신을 놔야 한다.

백신 비용은 50마리 이하 농가는 전액 국가가 백신 비용을 부담하고, 50마리 이상 농가는 50%를 농장주가 부담하고 있다.

백신 접종을 하지 않았다가 적발되면 최대 1천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여기에 구제역이 터진 농가는 살처분 보상금 20% 삭감에 백신 접종 소홀 정황까지 확인되면 보상금이 추가로 삭감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사용하고 있는 '오 삼공삼구(O 3039)', '오원 마니사(O1 Manisa)' 등 두 가지 백신주사 약품의 효능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매뉴얼대로 백신 접종이 이뤄진다면 구제역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 당국의 설명이다.

농식품부가 전국 소 농장에 배포하고 있는 '구제역 방역 표준행동요령'을 보면 백신은 반드시 직사광선을 피하고 냉장상태(2∼8℃)로 보관해야 한다.

백신이 얼거나 오랫동안 외부에 방치될 경우에는 백신의 성분이 손상돼 효능이 저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백신 접종 전에는 미리 백신을 꺼내 상온(15∼25℃)에 뒀다가 포장을 한번 뜯으면 가급적 빨리 접종해야 하는 등 철저한 매뉴얼 준수가 필수다.

매뉴얼을 지키지 않고 시간 단축을 위해 백신에 열을 가하거나, 주사기를 재사용하는 농가가 상당수 있는 것으로 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충북 보은과 전북 정읍 역시 백신 접종을 했다는 서류상 기록은 있지만, 항체 형성률이 현저히 낮은 것으로 볼 때 접종이 소홀히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 일부 젖소농장의 경우 착유량이 줄어든다는 이유로 백신 접종을 꺼리거나, 구제역 백신 접종을 하면 소가 유산한다는 소문까지 나도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밖에도 전문 수의사가 아닌 경우 주사를 놓는 과정에서 소나 돼지가 갑자기 몸을 심하게 움직이거나 전문성 부족 등으로 접종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경우도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중앙정부가 미칠 수 있는 행정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결국 농가의 철저한 협조가 필수"라며 "특히나 소의 경우 양돈 농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구제역이 덜 발생해 방역을 소홀히 한 측면도 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shin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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