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안전관리자 처우 '열악'…'속성 무더기 자격증'에 교육도 소홀
안전보다 '갑' 눈치보는 하청·용역구조…'비용총괄계약'이 부실관리 불러
(화성=연합뉴스) 이우성 기자 = "대부분 비정규직에 2∼3교대로 돌고 청소 같은 허드렛일까지 떠맡아도 월급은 160만∼180만원. 이런 데 소방안전관리자들이 자긍심 갖고 일할 수 있겠습니까."
4명의 생명을 앗아가는 등 51명의 사상자를 낸 경기 화성 동탄 메타폴리스 부속상가 화재를 계기로 소방·방재 분야 종사자들이 넋두리처럼 쏟아낸 자조 섞인 탄식이다.
건축물의 대형화와 고층화, 다양한 에너지원 사용으로 대형 재난사고 발생빈도가 증가하면서 건물의 안전예방 업무를 맡는 소방안전관리자를의무 배치해야 하는 대상 건물이 갈수록 늘고 있지만, 이들의 처우는 열악하기 그지없다.
소방안전관리 담당자는 대부분 비정규직이다.
대체로 지하 공간에서 2∼3교대로 근무하고 보일러 기계나 청소 등 다른 업무를 떠맡기도 하지만, 월 급여는 200만원이 채 안 된다.
정규직이라 해도 한직이다 보니 승진해도 차장이나 부장에서 끝나기 일쑤다. 업무에 대한 자긍심을 기대하기 쉽지 않다.
이근재 호원대 소방안전학과 교수는 "생명과 안전을 다루는 건데도 우리 사회는 이런 일을 얕보는 인식이 강하다"며 "실례로 소방관이 순직하면 일본은 20억, 미국은 30억∼50억원 가량의 보상·위로비가 지급되는데 우리는 어떠냐"고 반문했다.
소방의 '소'자도 모르는 사람이 형식적인 교육만 받고 어렵지 않게 관련 자격을 딸 수 있는 것도 문제다.
소방안전 관련 법이 정한 건물의 소방안전관리자로 선임되려면 관련 자격증이 필요하다. 자격은 특급, 1급, 2급으로 나뉜다.
등급별 관리 대상 건물은 연면적이나 층수, 취급물질 등에 따라 나뉘는데 특급 자격자가 필요한 대상 건축물은 전국적으로 400여개에 불과해 취득하기 까다로운 편이다.
반면 1∼2급 자격은 만 15세 이상이거나 일정 기준을 충족한 관련 업무 종사자나 관련학과 졸업생이면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정년퇴직한 고령자나 부녀자도 하루 8시간씩 4∼5일간 국민안전처 위탁을 받아 진행하는 한국소방안전협회의 교육을 받고 객관식 시험을 통과하면 자격증을 딸 수 있다.
전국 소방안전협회에서 연 4만∼5만명이 소방안전관리자 교육을 받는다.
소방교육은 각각의 현장 상황에 맞게 이뤄져야 실효성이 있는데, 이처럼 소방 안전관리에 대한 지식과 체험이 충분치 못한 사람들이 간단한 교육을 받고 자격을 딴뒤 현장에 배치됐을 때 제대로 대처하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속성'으로 자격을 딴 사람들은 대학 소방안전 학과에서 2∼4년간 전문지식을 배운 후 자격을 취득한 사람보다 적은 급여를 주고도 일을 시킬 수 있어 관련학과 전공자들의 취업을 더 힘들게 하는 악재로 작용하기도 한다.
소방안전관리의 또 다른 큰 문제는 여러 단계에 걸쳐 복잡하게 이뤄지는 하도급 관리 방식이다.
화재 시 대규모 피해가 우려되는 일정 규모 이상의 건축물은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ㆍ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소방안전관리자나 보조자, 법령이 정하는 업무 대행자를 두게 하고 있다.
건물주가 관리업체에 안전예방 업무를 맡기면 관리업체는 다시 용역업체와 계약을 해 이 업무를 넘기는 게 업계 관행이다.
이렇다 보니 용역업체 직원인 소방안전관리자는 계약상 '갑' 위치에 있는 원청 관리업체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다.
동탄 상가 화재도 건물 안전관리를 4단계에 걸친 하도급방식으로 운영해 온 왜곡된 구조가 참극을 초래한 한 요인으로 드러나고 있다.
메타폴리스 상가 시설·안전 관리는 모두 4단계에 걸친 계약을 기반으로 운영돼왔다.
최상위 '갑'으로 볼 수 있는 자산관리자(AM·asset management)가 건물 전체 운영을 M사(PM·property management)에 위탁했고, M사는 또 시설관리를 A사(FM·facility management)에 맡겼다.
A사는 다시 시설(전기, 기계, 건축, 방재), 청소, 주차, 보안 등을 각기 소규모 용역업체들에 재하도급 했다.
이렇게 4단계에 걸친 갑과 을들이 계약관계로 시설·안전 관리를 하다 보니 을의 입장에선 안전수칙 준수보단, '갑'의 입맛에 맞는 운영을 할수 밖에 없다는 것이 내부 직원들의 말이다.
관리업체 한 관계자는 "이번 화재도 사실 PM인 M사가 옛 뽀로로파크에 들어올 업체의 입주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주간에도 철거 공사를 진행하도록 하는 등 작업 일정을 서둘러 하다가 벌어진 일이라는 얘기가 많다"며 "시설관리는 FM인 A사가 맡고 있지만, 사실 PM이 '갑'이기 때문에 시키면 따라야 하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용역업체가 원청 측과 인건비, 관리비, 부품교체비까지 포함해 총괄계약을 하는 것도 문제다.
이근재 교수는 "용역업체가 자체 점검을 해 교체가 필요한 부품이 있는 것으로 진단해도 자기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니까 되도록 교체 안 하려고 한다"며 "허술한 관리로 이어지는 '셀프 점검'의 폐해"라고 지적했다.
용역업체의 소방안전관리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누리꾼(네이버 아이디 wind****)은 "용역업체에서 일하다 보면 위에서 한마디 하면 찍소리도 못하고 이행해야 하는 입장도 있다"며 "정규직으로 채용해 본인 업무에 좀 더 책임감을 느끼게, 또 이해당사자에게 할 말은 할 수 있게 권한을줬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이처럼 열악한 소방안전관리자들의 처우와 안전보다는 '갑' 눈치를 봐야하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 비용을 줄이느라 허술할 수 밖에 없는 관리시스템 등은 어쩔 수 없이 안전불감증으로 이어지는 요인이기도 하다.
4년제 소방학과를 졸업한 후 소방설비 전기·기계 기사 자격증을 취득해 서울에서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일하는 A씨는 "우리 사회의 안전 의식은 아직 후진국 수준"이라며 "제도 개선을 하고 설비 갖추는 데는 품이 들어도, 원칙을 지키는 건 인식만 바꾸면 되는데 잘 바뀌지 않는걸 보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큰 사고 터지면 탁상공론 대책만 나오니 그때뿐이고 달라지지 않는다"며 "구조적으로 문제를 진단하고 근본처방을 내놓아야만 되풀이되는 '인재'의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gaonnu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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