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구제역 첫 발생 이후 7천200여 농가에 2조64억원 보상
"축산농은 영세농 아닌 기업인, 접종 부실 농가에 책임 물어야"
(청주=연합뉴스) 심규석 기자 = 제1종 가축전염병인 구제역이 발생하면 대대적인 살처분이 불가피하다. 소·돼지가 구제역에서 회복되기까지의 시간보다 전파 속도가 훨씬 빨라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때문이다.
올 겨울 들어 첫 구제역 확진 판정을 받은 충북 보은의 젖소 사육농장이나 전북 정읍의 한우농가가 사육하는 소를 모두 살처분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살처분 지시는 가축전염병예방법상의 행정명령에 해당한다. 그런 만큼 그 피해에 대한 보상도 법에 따라 이뤄진다.
현행법상 구제역 양성 판정을 받은 농가는 살처분된 소의 값어치를 따져 시세의 80%를 보상받게 된다. 100%가 지급되지 않는 것은 구제역 발생에 방역 조치를 소홀히 한 농가의 책임도 있다는 점에서다.
축산업에 종사하는 농장주들은 자식처럼 키우던 소를 매몰 처리하고도 제값을 받지 못해 억장이 무너진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농가 피해를 최소화하자는 취지의 현행 보상 제도가 '부실 백신 접종'이라는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는 지적이 많다.
구제역이 터진 보은지역 젖소 사육농장 인근의 축산농가 상당수가 항체 형성률이 기준치에 미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반경 500m 안쪽의 9개 농가가 사육하는 한우·육우의 경우 평균 항체율이 54.4%에 그쳤고, 반경 3㎞ 안쪽 11개 농가의 젖소는 73%에 불과했다.
소의 항체 형성률이 80% 미만일 경우 구제역 감염 가능성이 커지는데, 이번 검사에서 항체 형성률이 0%인 곳도 적발됐다. 아예 백신을 접종하지 않았을 것으로 방역 당국은 보고 있다.
문제는 의심 신고를 제때 하거나 평상시 방역 활동에 별다른 하자가 없는 것으로 확인될 경우 구제역 발생 농가에는 통상 80%의 보상금이 지급된다는 점이다.
구제역이 발생해 살처분이 이뤄질 때는 항체가 100마리 중 5마리에만 형성될 정도로 백신 접종이 부실했는지, 100마리 모두에 항체가 잘 형성됐는지는 중요하지 않을 뿐더러 보상금 산정 기준도 아니다.
인부들까지 고용해 젖소나 한우를 밧줄로 묶어가며 백신을 힘들게 접종한 농가나 접종 시늉만 낸 농가 모두 같은 수준의 보상금을 받는 셈이다.
2000년 3월 국내에서 구제역이 처음 발생한 이후 작년 봄까지 7천259개 농가의 소·돼지 등 우제류 390만6천 마리가 살처분됐다.
이들 농가에 지급된 보상금은 무려 2조64억원에 달했다. 생활안정자금과 융자·방역비 등을 더하면 3조3천68억원이나 된다.
백신 접종 이후 덜할 것으로 예상됐던 살처분 보상금이나 방역 비용도 그 이전과 별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다. 구제역이 전국을 휩쓸었던 2014년 12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투입된 보상금과 방역비 등은 574억원에 달했다.
축산 방역 당국에서는 축산농가의 방역 책임감을 키우기 위해 보상 제도를 대폭 개선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살처분이 이뤄지면 개체별로 피를 뽑아 항체 검사를 하게 된다. 이때 항체 형성률이 5%라면 보상금을 5%만 주되 항체율이 99%에 달해 백신 접종을 제대로 한 것이 확인된 농가에는 구제역에 걸렸다는 이유만으로 보상금을 20%나 깎지 말고 99%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방역 당국의 한 관계자는 "축산농은 영세 농민이 아닌 기업인으로 봐야 한다"며 "차등 보상제 도입 등 여러 방안을 강구해 백신 접종을 비롯한 방역 책임 역시 기업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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