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간 혈세 3조3천억원 쏟아붓고도 못 잡은 구제역

입력 2017-02-10 06:17   수정 2017-02-10 09:04

16년간 혈세 3조3천억원 쏟아붓고도 못 잡은 구제역

작년까지 8차례 발생…피해농가 살처분 보상·생계안정자금 지원

"백신 의존 지나치게 높고 허술…소독·통제 등 차단 방역 소홀"

(청주=연합뉴스) 심규석 기자 = 정부가 구제역을 잡는 '전가의 보도'로 내세웠던 백신 카드가 도무지 맥을 추지 못하고 있다.


구제역 확산을 막아 청정국 지위를 조속히 회복하겠다며 2010년 12월 마련한 비상 대책이었지만 오히려 그 이전보다 구제역 발생 빈도가 더 잦아졌다.

국내에서 2000년 창궐한 구제역은 작년까지 모두 8번 터졌다. 16년간 살처분 비용과 생계안정자금 등 구제역과 관련해 투입한 혈세만 해도 3조3천127억원에 달한다.

올해도 충북 보은, 전북 정읍, 경기 연천에서 잇따라 터진 데 이어 9일 보은에서 추가 양성 반응이 나타나면서 확산 조짐을 보이자 축산 방역 당국과 농민들은 긴장하고 있다.

백신 논란도 다시 불거졌다. 방역 당국은 부실 접종 의혹 등 농민의 '도덕성 부재'를 문제삼고 있지만 축산 농민들은 백신을 제대로 놨다며 백신의 효능이나 당국의 부실한 교육 등을 문제 삼고 있다.

당국과 농민들이 백신을 둘러싼 책임 떠넘기기를 할 만큼 그 효용성이 논란이 되면서 새로운 처방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당국이 강조했던 것처럼 '백신 카드'가 구제역 대응의 유력한 수단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셈이다.

구제역이 국내에서 처음 창궐한 것은 2000년 3월이다. 그해 4월 15일까지 22일간 3개 도의 6개 시·군에서 구제역이 발생했다.

이 기간 182개 농가의 소 2천여 마리가 살처분되면서 투입된 혈세는 만만치 않았다.

보상금은 71억원에 그쳤지만 생계안정 명목으로 2억7천만원이 지원됐고 이동제한 조치가 취해졌던 농가의 소 44만4천마리를 수매하는데 2천428억원이 들었다. 재입식을 돕기 위한 융자금 21억원과 방역비 202억원 등을 더해 2천725억원이나 됐다.

2002년 5∼6월에도 2개 도, 4개 시·군에서 구제역이 발생하면서 53일간 162개 농가의 소·돼지 16만 마리가 살처분됐고, 1천58억원이 투입됐다.

9년간 잠잠하던 구제역이 쓰나미처럼 몰려온 것은 2010년이다. 그해 1월 2일부터 28일간 경기 포천·연천에서 55개 농가의 소 6천마리가 살처분됐는데, 사태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해 4월 8일부터 29일간 4개 도, 4개 군 395개 농가의 소·돼지 1만1천500여 마리가 살처분됐고, 6개월 후인 그해 11월 28일부터 이듬해 4월 21일까지 145일간 11개 도, 75개 시·군 6천241개 농장의 소·돼지 33만6천여 마리가 살처분됐다.

2010년 1월부터 2011년 4월까지 3차례의 구제역 발생 때 투입된 혈세는 무려 2조8천695억원에 달했다.

이때 나온 대책이 백신 접종이었다. 백신을 접종하면 구제역을 100% 차단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피해가 사상 최대를 넘어서자 가장 유력한 대응 방안이라며 당국이 들고 나온 조치였다.


그러나 백신 접종도 구제역을 차단하는데는 역부족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약발'이 먹히지 않는 양상이다.

3년간 뜸했던 구제역이 2014년 7월 23일부터 보름간 2개 도, 3개 시·군에서 발생, 3개 농가의 돼지 2천마리가 살처분돼 17억원의 재정이 지출됐다.

같은 해 12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147일간 또다시 구제역이 7개 도, 33개 시·군을 휩쓸며 196개 농가의 소·돼지 17만3천마리가 살처분됐는데 이때 투입된 예산은 무려 574억원에 달했다.

백신 접종이 이뤄지기 이전과 별반 다를 것 없이 구제역이 번지면서 피해가 막대했고, 그에 따른 국가 재정 지출 규모도 커진 것이다.

작년 1∼3월에도 45일간 3개 시·도, 6개 시·군에서 25개 농가의 돼지 3만3천마리가 구제역으로 살처분돼 수습 비용으로 59억원이 투입됐다.

조류 인플루엔자(AI)처럼 구제역이 해마다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자 그 원인이 축산 방역당국의 무책임한 탁상행정에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국제수역사무국(OIE) 기준에 따랐다고 하지만 전체 사육두수와 관계없이 농가 1곳당 소 1마리만을 표본 검사해 항체 형성률을 따지는 허술한 관리가 화를 키웠다는 얘기다.

이런 표본 검사 방식으로 하다보니 국내에서 사육되는 전체 소가 314만 마리인데, 이의 0.3% 정도만 검사하고 전국 평균 소 항체율이 95.6%라고 자랑하지만 정작 구제역에서는 속수무책 노출되는 '숫자놀음'이 벌어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백신을 접종하면 구제역 발생을 차단할 수 있다면서 전적으로 축산 농가에 백신 접종을 맡기고, 사후 관리도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축산농민들은 심지어 당국이 제대로 된 접종법 교육조차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접종법도 모른 채 백신을 놓은 농가도 적지 않다는 게 축산단체 주장이다.

백신에만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축사 소독 등 차단 방역에 안일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구제역이 해마다 되풀이 되는 데는 복합적인 요인이 있겠지만 결국 16년동안 3조3천억원이라는 막대한 혈세를 쏟아붓고도 근본적인 근절책 마련을 위한 고민 없이 허술한 백신 접종에만 매달린 데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방역 당국의 한 관계자는 "전염병 예방은 철저한 축사 안팎 소독과 외부인 통제, 출입 차량에 대한 철저한 소독이 중심이 돼야 하는데 백신 도입 이후 가장 원칙적인 차단 방역에 소홀했을 수 있다"고 토로했다.

ks@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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