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헌법재판소(소장 권한대행 이정미)의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 시점이 2월을 넘기게 되면서 헌재의 조기 결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야권과 진보진영에서 쏟아지고 있다. 물론 이들이 원하는 조기 결정은 탄핵 인용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과 보수진영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헌재를 압박하는 것 자체가 반 헌법적라는 것이다. 헌재의 탄핵심판 시점과 방향을 놓고 그렇지 않아도 보수·진보 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계속 이런 분위기로 가면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지 한쪽의 '불복 사태'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헌정 체제가 한번 훼손되면 완전한 복원이 어려울지도 모른다. 보혁 간 진영 논리를 떠나 국가적으로 매우 불행한 일이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9일 의원총회에서 "이번 토요일은 대보름인데 입춘대길이 아니라 탄핵해야 대길이 열린다"면서 "촛불을 들고 나라의 명운을 밝히는 길에 빠짐없이 단일대오를 이뤄달라"고 의원들을 독려했다. 당 차원에서 촛불집회 동원령을 내린 것 같다. 우상호 원내대표는 기자들에게 "대선 경선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것처럼 보이는 게 촛불민심에 비춰 적절하지 않다"면서 "의원들이 촛불집회에 대거 참석해 탄핵의지를 보여주자는 의견이 많았다"고 전했다. 전날에도 추미애·박지원(국민의당)·심상정(정의당) 야3당 대표가 긴급회동을 갖고, 이정미 소장 권한대행의 퇴임일인 3월 13일 이전에 헌재가 탄핵심판을 인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결정 시점을 앞당기는 것은 물론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탄핵 결정을 내리라는 얘기였다. 정우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9일 비상대책위 회의에서 "(야3당 대표의 요구는) 헌재에 대한 압박을 넘어 협박과 공갈로 볼 수밖에 없다"면서 "촛불민심을 선동하고 대의민주주의를 포기하는 반 의회적 작태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야당들의 이런 움직임은, 거의 기정사실로 여겨졌던 '탄핵 인용' 분위기에서 뭔가 이상기류가 감지됐기 때문인 듯하다. 그 이상기류가 무엇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야3당 대표가 평결 방향과 시점까지 못 박아 헌재에 이런 식의 요구를 한 것은 여러 면에서 적절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민주주의 헌정 체제의 근간인 '3권 분립' 정신을 노골적으로 부정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현 국회에서 과반을 점하고 있는 야권이라 해도 동등한 헌법기관인 헌재를 이렇게 무례하게 흔들 수는 없다. 그럴 리 없으리라 믿지만 혹시 지금의 우리 상황을 근본적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물론 정당의 지상목표가 집권이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성급히 달아오른 조기대선 국면에선 판세의 작은 진동에도 민감해질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헌법 위반을 탄핵하려는 정당들로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그게 바로 헌법과 법치주의를 지키는 엄격한 금지선이다.
주말인 11일 서울 등 전국 대도시 도심에서는 양극단으로 갈라진 대규모 군중집회가 열릴 예정이다. 상대방에 맞불을 놓으려는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가 서로 멀지 않은 장소에서 열리는 것 같다. 탄핵 국면이 이어지면서 양 세력 간의 힘겨루기도 과열 우려를 낳을 만큼 격해지고 있다. 실제로 집회 현장에선 상당한 에너지의 물리적, 심리적 긴장감이 느껴진다고 한다. 수뇌부가 출동하는 민주당은 말할 것도 없고, 새누리당에서도 이번 주말 집회에 상당수 의원들이 나갈 것 같다. 흥분한 군중의 열기가 엉뚱한 불상사로 이어지지 않도록 자극적인 발언이나 행동을 자제해야 한다. 촛불이든 태극기든 정치공학적 시각으로 봐선 안 된다. 광장이 뜨거워져도 정치권은 냉정을 지켜야 한다.희미해진 법치의 금지선을 다시 확인하고 자기 위치를 바로잡을 때다.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