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 부패 의혹으로 야당으로부터 퇴진 요구를 받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의 국정연설이 야당과 보안요원 간 몸싸움으로 중단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9일 AFP통신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이날 의회에선 제이콥 주마(74) 대통령이 국정연설을 하자 좌파신당인 경제자유투사당(EFF) 의원들이 일어나 대통령 연설을 가로막았다.
경제자유투사당의 발레카 음베테 대변인은 "인내심을 갖고 당신이 의사를 표현할 기회를 줬지만 그 기회를 남용하고 있다"며 비판했으며 EFF의 줄리어스 말레마 대표는 주마 대통령을 가리켜 "구제 불가능한, 속까지 썩은 인간"이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EFF 의원들의 야유가 계속되는 가운데 제1야당인 민주동맹(DA) 의원들은 회의장 밖으로 나가버렸다.
결국, 보안요원이 투입돼 EFF 의원들을 밖으로 끌어냈다. 이 과정에서 감정이 격해진 의원들이 머리에 쓴 베레모를 집어 던지고 격렬히 항의하며 몸싸움을 벌였다.
의원들이 모두 밖으로 끌려나간 다음에야 주마 대통령 연설은 재개됐다.
이날 물리적 충돌은 연설 전부터 예견됐다.
EFF 의원들은 이날 붉은색 작업복과 베레모를 쓰고 참석했으며 주마 대통령은 이에 맞서 의회 안팎에 보안요원과 경찰을 배치했기 때문이다.
의회 밖에서도 여당 지지자와 야당 지지자 간의 충돌을 막기 위해 경찰이 수차례 섬광 수류탄을 발사하는 등 어수선한 상황이 펼쳐졌다.
지난해는 지지자 간 대규모 충돌이 벌어져 피해자가 속출했다.
이날 의회 안팎의 소란은 지난해 발표된 주마 대통령의 각종 비리 의혹 보고서와 관련됐다.
지난해 남아공에선 주마 대통령과 인도계 유력 재벌가인 굽타 일가의 부적절한 결탁에 관한 각종 증거 등이 담긴 보고서가 발표되자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시위가 이어졌다.
그러나 집권당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불신임 투표 발의를 거부하면서 주마 대통령이 국정에 복귀하자 야당은 전면 투쟁을 선언한 상황이다.
2009년부터 집권한 주마 대통령은 사저 수리 비용에 국고 2억1천590만(한화 약 166억원)을 쏟아부어 헌재로부터 비용 일부를 반환하라는 선고를 받기도 했다.
한편 주마 대통령은 한 시간여 만에 '트레이드마크' 격인 미소를 띠며 다시 연단에서 토지 개혁과 흑인의 사업체 보유 증진, 낮은 경제성장률 회복을 위한 정책안을 발표했다.
주마 대통령은 국정연설에서 올해 국가의 경쟁 관련 규정을 개정해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개선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런 맥락에서 식민지 기간에 백인들에게 빼앗긴 토지를 다시 국민에게 재분배하는 법안도 의회에 상정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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