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자살예방 첨병?…"34년간 교육 한번 못받았다"

입력 2017-02-12 07:13  

의사가 자살예방 첨병?…"34년간 교육 한번 못받았다"

병원 다니는 환자 중 자살자 많지만 정작 의료진은 예방역할 못해

'범의료 자살예방연구회' 출범…"의사·간호사 팔 걷고 나설 것"

(서울=연합뉴스) 김길원 기자 = "한국의 자살률이 14년간 세계 1위입니다. 하지만 의대를 졸업하고 34년 동안 단 한 번도 다른 사람의 자살을 어떻게 예방해야 할지에 대해 교육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중앙자살예방센터와 보건복지부 자살예방 관계자들은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많은 예산과 연구비는 어디에 쓰고 있나요? 엊그제 중앙자살예방센터에 직접 전화했는데 자동응답만 나오고 받지를 않았습니다. 매일 40명이 자살로 죽고 있는데 말입니다."

뇌전증(간질) 치료 전문가인 홍승봉(59) 삼성서울서울병원 신경과 교수가 한국의 자살예방정책을 비판하며 작정하고 내뱉은 말이다. 자살예방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게 병원의 의료진이지만, 정작 각종 자살예방사업에서 의료진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홍 교수는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대한뇌전증학회와 대한내과의사회, 대한소아과학회, 대한가정의학회, 대한신경과의사회, 대한간호협회 등이 공동 참여하는'범의료 자살예방연구회'를 최근 창립했다. 우울증으로 자살률이 높은 뇌전증 환자뿐만 아니라 여러 진료과목에서 발생하는 우울증 환자들의 자살을 의료진이 나서 적극적으로 예방해 보자는 게 이 연구회의 목표다.

홍 교수는 "일본은 1년에 3~4회 모든 의사에게 환자들의 자살을 막기 위한 예방교육을 하지만 한국은 어느 병원에서도 자살 고위험군 환자에 대한 응급대처 프로그램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자살하려고 준비하고 있는 환자를 발견해도 대처할 준비가 안 돼 있는 게 한국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의료계가 이처럼 자살예방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로 한 것은 좀처럼 줄지 않는 한국의 자살률 때문이다.

실제 한국의 자살률은 2003년 이후로 줄곧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를 지키고 있다. 여기에 자살이 노인과 청소년의 사망원인 1위, 전체 국민의 사망원인 4위로 올라섰다. 하루에 자살로 사망하는 사람의 수가 약 40명에 이른다. 2015년 온 나라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의 총사망자 수 38명보다도 많은 셈이다.

의료계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자살률을 낮추려면 병원에 다니는 여러 신체질환자의 높은 자살위험도에 주목해야 한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홍 교수는 "신체질환자의 자살위험도는 기본적으로 건강한 사람보다 50%에서 최대 2천%까지 높다"면서 "자살자들에 대한 심리부검 결과를 보면 80~90%가 우울증을 앓고 있었으며, 80% 이상이 자살하기 한달 이내에 여러 가지 신체 증상으로 병·의원을 방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특히 뇌전증 환자의 경우 당뇨병, 고혈압, 뇌종양처럼 약물이나 수술로 잘 치료하면 완치될 수 있는 질환인데도 사회적인 냉대와 차별로 마음의 상처가 깊어지면서 자살 충동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게 홍 교수의 지적이다.

이에 따라 범의료 자살예방연구회는 국내 모든 병·의원에 자살예방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전국적인 자살예방 캠페인을 즉각 실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세부 실천 사항으로는 ▲ 병·의원을 다니는 모든 환자를 대상으로 우울증 검사를 할 것 ▲ 병·의원을 다니는 모든 환자에게 자살을 생각하고 있거나 시도한 적이 있는지 물어볼 것 ▲ 보건복지부와 중앙자살예방센터는 대형병원들과 자살고위험군을 위한 자살예방 코디네이터를 육성할 것 ▲ 자살예방 교육 및 캠페인을 실시할 것 등이 제시됐다.

여러 참여 학회 중 대한뇌전증학회가 가장 먼저 캠페인에 나섰다. 학회는 세계 뇌전증의 날(2월 13일)을 맞아 13일부터 17일을 뇌전증 주간으로 정해 전국 33개 병원에서 우울증과 자살예방 등을 포함한 건강강좌를 개최한다.

홍승봉 교수는 "매일 수십 명의 국민이 자살하고 있는데 언론이나 대선주자 중 그 누구도 자살예방에 관심을 보이거나 대책을 촉구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면서 "해결책을 알고 있는데도 더 이상 방관하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인 만큼 각계각층에서 자살예방에 더욱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bi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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