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단기 부동자금이 사상 처음 1천조 원을 넘어섰다. 단기 부동자금이란 현금화하기 쉬운 대기성 자금을 뜻한다. 이런 자금이 많아지면 시중 유동성의 경제 선순환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1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작년 말 현재 단기 부동자금은 1천10조3천억 원으로 집계됐다. 전체 통화량(M2·광의통화)의 42% 수준이다. 유형별로는 수시입출식 저축성예금이 49.3%로 거의 절반이었고 나머지는 요구불예금(20.9%), 현금(8.6%), 머니마켓펀드(6.1%), 6개월 미만 정기예금(6.0%), 증권사 투자자예탁금(2.2%) 등이었다. 단기 부동자금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일반 통화량처럼 경제 규모에 비례해 늘어난다. 예컨대 성장률이 2.3%였던 2012년에는 단기 부동자금도 2.5% 증가에 그쳤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서는 2013년 7.0%, 2014년 11.5%, 2015년 17.2%, 지난해 8.5% 늘었다. 지난 4년 간 단기 부동자금 증가액이 343조9천억 원(51.6%))에 달했다.
저금리 정책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2012년 7월부터 작년 6월까지 0.25%씩 8차례 인하됐다. 그동안 기준금리는 연 3.25%에서 연 1.25%로 떨어졌다. 그 과정에서 중앙은행의 독립성 논란이 종종 벌어졌다. 정부와 여당이 공공연히 금리 인하를 압박하는 상황이 되풀이됐다. 물론 저금리 정책으로 풀린 돈이 소비나 장기투자로 이어지면 단기 부동자금이 이렇게 급증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경제의 성장 잠재력이 떨어지고 불확실성도 어느 때보다 커진 상태다. 이럴 때 과도하게 풀린 돈은 선순환 흐름을 만들지 못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작년 12월 현재 우리 경제의 대내외 불확실성은 2011년 유럽 재정위기 때 수준으로 나빠졌다"면서 "환율, 변동성지수(VIX) 등 11개 지표로 산출한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 지수가 48포인트로, 유럽 재정위기 때(52.8포인트)에 근접했다"고 밝혔다.
단기 부동자금의 급증은 국가 경제에 아주 나쁜 신호다. 일부 전문가는 '유동성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한다. 유동성 함정은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제시한 이론이다. 돈을 아무리 많이 풀어도 통화정책의 효과를 보지 못하는 상태를 뜻한다. 한국 경제가 이런 최악의 상황을 맞지 않으려면 정부와 통화 당국의 현명한 판단과 대처가 필요하다. 우선 단기 부동자금이 왜 이렇게 증가하는지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 경기 부양을 명분으로 너무 장기간에 걸쳐 느슨한 통화정책을 썼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오랜 숙제지만 한은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인정하는 풍토가 조성돼야 함은 물론이다. 정부도 문제지만 정치권까지 나서 한은을 흔들면 안정적인 통화정책을 기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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