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메디아'로 연극의상 첫 도전…"기회 있으면 또다시 하고 싶어"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작품 해석은 어려웠지만, 연출가와 처음 만난 자리에서 연출가가 너무 멋져서 그 자리에서 연극 의상을 맡아야겠다고 결단을 내렸죠.(웃음)"
국내 1세대 패션디자이너 진태옥(83)이 24일부터 서울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오르는 연극 '메디아'를 통해 연극 의상에 최초로 도전한다.
1993년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프랑스 파리 프레타포르테 컬렉션에 참여하는 등 50여년 디자이너 인생에서 숱한 런웨이를 겪은 그에게 연극 무대는 또다른 런웨이였다.
진태옥 디자이너는 공연 시작에 앞서 13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작품을 해보니 디자이너의 컬렉션을 발표하는 런웨이나 연극과 동일한 부분이 있었다"면서 "컬렉션 때 런웨이에서는 나(디자이너)를 표현하고 연극무대에서는 배우의 캐릭터, 작품의 성격 이걸 표현한다는 것만 다를 뿐 공통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연습장면을 보면서 예술은 '만국 공통어'라는 것을 느꼈어요. 첫 리딩 때 참여해보니 '할 수 있겠다'라는 자신감도 생겼죠. 다만 무대가 단순해서 어떤 방향으로 (의상을) 해야 하나 고민은 있었지만, 연출자와 의논해가면서 의상 디자인의 어려움은 없었던 것 같아요."
특히 사랑하는 남자에게 배신을 당하고 처절한 복수를 감행하는 주인공 '메디아'의 극단적인 면을 표현하는데 많은 공을 들였다.
메디아가 겪는 암흑과 같은 고통과 분노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검정 벨벳 의상을, 복수를 위해 자식까지 죽이는 장면에서는 모든 것을 포기한 여성의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힘이 없는 저지(jersey) 의상을 택했다.
패션디자이너가 연극 등 공연의상에 참여할 때 의상은 화려하지만 정작 배우들의 움직임은 고려하지 않아 실제 공연에서는 불편하다는 지적까지 고려해 의상을 손보기도 했다.
"배우의 활동 분량에 따라 의상을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은 있었던 것 같아요. 피팅을 여러 차례 했고 특히 메디아 역은 피팅을 세 번이나 했어요. 메디아가 무대 위에서 활동하는 분량까지 계산하느라 애를 썼죠."
자신 있게 도전했지만, 진태옥이 무대 의상에 도전한다는 소식에 패션계의 관심이 쏠린 것도 부담됐을 법 하다.
"진태옥이 무대 의상을 한다니 관심들이 많은 것 같더라고요. 스토리를 아마 15번 정도 읽은 것 같아요. 디자인을 1∼2년 한 초년병도 아니고 50년 했는데 무대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게 됐죠. 극의 내용은 잔인하고 어렵지만 정말 아름다운 무대를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는 첫 도전에 만족해하며 다시 연극 의상에 도전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실험하는 것이 아주 행복했고 즐거워서 다음에 또 좋은 작품이 있으면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리허설을 보는데 실컷 울어야 하는 감동을 느꼈죠. 이제 컬렉션 하지 말고 연극 의상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했을 정도로 '메디아'에 큰 매력을 느꼈어요. 내가 왜 이런 재미있는 장르를 그동안 소홀히 했을까 하는 생각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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