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1 최후의 오디세이' 첫 번역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HAL, 이 우주선을 지휘하는 사람은 나야. 동면기를 수동 조종으로 돌려. 이건 명령이야."
"죄송합니다만, 데이브, 특수 서브루틴 C1435-4에 따르면, (…) 따라서 나는 당신의 명령을 무효로 간주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은 지금 지성적으로 명령권을 행사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니까요."
SF작가 아서 C. 클라크(1917∼2008)의 소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에서 인공지능 컴퓨터 '할(HAL) 9000'이 우주탐사선 디스커버리호 선장 데이브에게 도전하는 장면이다. 디스커버리호 통제권을 손에 넣으려는 할의 반란은 인공지능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오늘날 더욱 섬뜩하게 다가온다.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은 클라크의 대표작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리즈가 한꺼번에 번역돼 나왔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로 시작해 '2010 스페이스 오디세이'(1982), '2061 스페이스 오디세이'(1985), '3001 최후의 오디세이'(1996)까지 이어지는 4부작이다. 이 가운데 '3001 최후의 오디세이'는 국내 SF마니아들이 번역해 돌려읽은 적이 있지만 정식 출간은 처음이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초원의 원숭이인간 묘사에서 시작해 디스커버리호의 목성·토성 탐사를 거쳐 신인류의 탄생까지 나아간다. 단순한 공상과학 소설을 넘어 인류의 역사적 진화를 보여주겠다는 작가의 야심이 엿보이는 전개다.
작가는 인류가 달 탐사에 성공하기도 전에 오로지 과학적 지식과 상상력에 기초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썼다. 2부 이후는 1977년 발사된 보이저호의 태양계 거대행성 탐사 성과에 기댄다. '206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는 핼리혜성도 무대로 삼는다.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리즈는 작가의 예언에 가까운 과학적 통찰로 관심을 끌었다. 소설에서 디스커버리호는 목성의 중력을 이용해 속력을 올린 다음 토성으로 날아가는데 이 '섭동(攝動) 기동'은 10여 년 뒤 보이저 1호가 그대로 사용했다. '3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등장하는 우주 엘리베이터는 최근 미국·일본 과학자들에 의해 점점 현실에 가까워지고 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1968년 동명 영화를 제작했다. 클라크와 큐브릭은 1964년부터 의견을 교환하며 각본과 소설을 동시에 썼지만 내용은 조금씩 다르다. 영화에서 디스커버리호는 토성 대신 목성을 목적지로 하고, 원숭이 우두머리가 뼈다귀를 하늘로 던지는 영화 초반부의 유명한 장면이 소설엔 나오지 않는다.
판타지소설가 이영도는 "소설판은 분명 영화판에 종속될 생각이 없는 것처럼 자기 완결성을 추구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와 소설의 이 독특한 조화와 거기서 발산되는 시너지는 놓치기 아깝다"고 말했다.
황금가지. 김승욱·이지연·송경아 옮김. 각권 312∼468쪽. 각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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