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인' 장혁의 혼신 액션×이하나의 미세연기 긴장도 높여
형사의 목숨 건 활약에 공포심 넘어서는 신뢰감 형성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이쯤 되면 공포영화 수준이다.
부릅뜬 시체의 두 눈이 벽장 속에서 화면을 노려보고 있고, 심지어 시체를 십자가에 매달듯 못질해 걸어둔다.
폐허가 된 집에 끌려간 소녀는 변태성욕자에게 살해당해 시신이 훼손될 일촉즉발 위기에 처하고, 경찰의 아내는 길 가다가 사이코패스에게 쇠망치로 잔인하게 살해당한다.
범인 쫓는 형사 드라마가 긴장과 흥분을 자아내는 스릴러와 결합한 것까지는 익숙하다.
그런데 OCN 주말극 '보이스'는 스릴러를 넘어 호러 수준의 충격요법과 편집기술을 발휘하고 있는 게 특징이다. 그런데도 15세 관람가를 유지하고 있다.
땀냄새 나는 진짜 액션과 탄탄한 연기의 조화가 끔찍한 공포를 중화시키는 게 묘미다.
이 문제적 드라마가 타임슬립과 막장으로 점철된 안방극장에 모처럼 새로운 볼거리를 안겨주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 장혁, 액션의 끝을 보다
장혁은 칼을 갈았다.
지난해 주연한 KBS 2TV 의학드라마 '뷰티풀 마인드'의 시청률이 2%까지 떨어진 끝에 조기종영하는 굴욕을 맛본 장혁이다.
천재 의사 가운을 벗고, 동물적 본능과 '촉'으로 움직이는 열혈 형사로 변신한 그는 '보이스'를 통해 '뷰티풀 마인드'의 실패를 단박에 덮어버렸다.
역시 장혁은 액션이다. 20여년 절권도로 단련된 실제 '무도인'인 장혁은 '보이스'에서 리얼 액션의 진수를 선보인다.
지난 12일 방송된 8회에서 장혁은 전설의 '17 대 1' 액션을 선보였다. 이소룡이나 성룡이 등장하는 영화도 아니고, 현실에 발을 붙인 드라마에서 이 무슨 장난인가 싶지만 장혁은 실제처럼, 사실인 것처럼 그 어려운 걸 해냈다.
물론 '괴물 형사'라는 주인공 무진혁이 한 것이지만, 장혁은 이 처절한 연기의 99%를 직접 해냈다고 제작진은 전했다. 대역을 거의 쓰지 않았다는 얘기다. 실제 주먹을 연속적으로 날리는 날렵한 손동작은 오롯이 장혁의 실력이다. 원 없이 실력발휘를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최민식이 펼쳤던, 길고 긴 복도 장도리 액션을 떠올리게 한 이 장면에서 장혁은 무기 하나 없이 맨몸으로 싸워나갔다. 그렇다고 겉멋 잔뜩 든 '공갈빵 액션'도 아니다. 액션 동작 하나하나를 정성을 다해 펼쳤음이 화면에 그대로 드러났고, 시청자도 덩달아 숨이 차 올랐다.
이 장면에서는 총 12명의 배우가 장혁을 상대했는데, 같은 배우가 들락날락하며 중복 촬영을 해 실제로 무진혁이 상대한 '적'은 훨씬 더 많아 보였다. 무진혁은 개미떼처럼 달려드는 적들을 하나씩 격파하면서 전진해나갔다. 기진맥진 곧 쓰러질 것 같았지만, '미친개'라는 별명답게 무진혁은 눈앞의 장애물들을 차례로 해치우면서 탈출구를 향해 갔다.
제작진은 "장혁이 99% 대역 없이 액션을 소화하고 있다"며 "장혁의 몸을 던진 액션으로 드라마가 더욱 살고 있다"고 밝혔다.
◇ 15세 관람가와 19세 관람가의 아슬아슬 줄타기
밤 10시 드라마라고는 하지만, 엄연히 TV인데 '보이스'의 폭력성이 과도한 게 아닌가 싶은 순간이 많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아직 '15세 관람가'다.
'청소년 관람불가'의 턱밑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면서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보이스'는 무자비한 범죄를 전면에 내세운다. 판타지가 아니라, 실제 지금 현실의 어느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강력 범죄를 다룬다.
우리가 숨쉬고 있는 현실의 폭력성을 고발하면서, 이러한 흉악범을 눈앞에 두고도 못 잡는 현실의 부조리와 부실한 시스템을 지적한다.
112 범죄 신고 센터에서 응대를 잘못하는 바람에, 출동한 경찰의 판단 미스로, 혹은 법규의 허점으로 천벌 받을 범죄자를 놓치고 마는 상황이 TV 화면에서 펼쳐진다.
극적인 장치일 것이라 믿고 싶지만, 경찰 조직 내 부패도 범인 검거를 방해하니, 시청자의 분노는 주말 밤 집 천장을 뚫고 나간다.
애드거 앨런 포의 추리 소설을 보는 듯한, 촘촘히 짜인 플롯과 끔찍한 범죄는 글로 쓰인 것을 읽을 때보다 훨씬 더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사이코패스의 '창의적 범죄'를 영상으로 보고 있자니 저 옛날 이불 뒤집어쓰고 '전설의 고향'을 보던 때가 떠오른다.
드라마의 이러한 영상은 지극히 폭력적이다. 편집은 또 얼마나 얄미운지, 매순간 긴장감을 끝까지 끌어올리고야 만다.
하지만 제작진은 과격함에 매몰되지 않는다. "끝까지 쫓아가 잡는다"는 무진혁 형사의 불굴의 집념을 중심에 놓아 시청자의 강한 감정이입을 이끈다.
끔찍한 범죄 넘어, 작은 단서 하나라도 찾아내 죄를 지은 놈을 잡겠다는 형사의 목숨을 건 활약을 중심에 단단히 박아놓아 공포심보다 큰 신뢰감을 형성한다.
◇ 적절한 판타지로 극에 리듬 넣어줘
장혁이 몸이 부서지라 뛰어다니며 현실감을 높인다면, 이하나는 카펫에 떨어지는 클립의 소리도 잡아내는 '소머즈 청각'으로 판타지를 구현한다.
드라마는 그러한 판타지로 이 '각박한' 현실 드라마에 리듬을 넣어준다.
초능력적인 청각을 발휘하는 112신고센터장 강권주가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을 뚫고 나가는 것을 통해 드라마에 숨 쉴 구멍을 넣어준다.
이하나는 펄떡펄떡 뛰는 장혁과 대치점에 서서 오로지 표정만으로 예민한 청각을 표현해야 하는 미세한 연기를 성실하게 소화하고 있다. 피죽도 못 얻어먹은 파리한 얼굴이지만, 범죄 현장의 작은 단서라도 포착해내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하는 그의 모습은 시청자의 응원을 불러낸다.
이러한 초능력이 있다면, '나주 드들강 여고생 살인사건'처럼 억울하게 죽어간 피해자들의 사연이 십수년 만에야 밝혀지지 않고 바로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부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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