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세관 교수 '이십세기 집합주택' 펴내…"수억 명의 삶 바꿔"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집합주택은 아파트와 연립주택, 다세대주택 등 모든 형태의 모여 있는 주택을 뜻한다. 산업화와 도시화 때문에 만성적인 주택 부족에 시달린 각국에서는 엄청난 양의 집합주택을 지었다. 20세기 건축문화에서 집합주택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수억 명의 삶을 변화시킨" 20세기 100년간의 집합주택을 살펴본 책이 나왔다. 손세관 중앙대 건축학부 교수가 2008년부터 8년간 집필한 '이십세기 집합주택-근대 공동주거 백년의 역사'(열화당 펴냄)는 외국에서도 흔치 않은 집합주택 종합서다. 고대부터 20세기까지 도시주택과 집합주택을 정리한 '도시주거 형성의 역사'(1993)와 짝을 이루는 책이다.
저자는 지난 100년을 순수의 시대, 혼돈의 시대, 자각의 시대로 구분 지었다. 논의의 주 무대는 네덜란드, 독일 등 20세기 주거문화의 변화를 주도한 유럽이다.
순수의 시대인 1900~1930년대 건축가들은 서민에게 '최소한의 주거'를 마련해주겠다는 열망을 안고 새로운 주거 환경을 모색했다. 주택을 비롯해 사회 전반의 인프라를 망가뜨린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부터는 각국이 주택의 대량 건설에만 급급하면서 부작용이 속출했다. 이 시기는 주거 환경의 혁신도 함께 일어난 혼돈의 시대였다. 1970년대 중반부터 기존의 주택 공급 방법에 문제가 있음을 깨달은 건축가들은 인간과 역사, 전통, 문화 등을 고려하는 집합주택 건설을 모색한다. 바로 자각의 시대다.
더 좋은 주거 환경을 만들고자 시행착오를 거듭했던 건축가들의 노력이 책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특히 정부나 상류층을 위한 건물이 아닌, 서민을 위한 주택 건설이라는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은 '순수의 시대' 건축가들은 선구적 운동가였다.
손 교수는 15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1920~1930년대 건축가들은 서민과 노동자에게 값싸고 위생적이면서도 예쁜 주택을 지어주기 위해 정말 열과 성을 다했다"면서 "그런 것이 근대 건축의 발전을 이끈 힘"이라고 평가했다.
물론 그 노력의 결과물이 당대에는 환영받지 못할 때도 있었다. 건축가 르코르뷔지에가 1952년 프랑스 마르세유에 건설한 집합주택 '위니테 다비타시옹'(Unite d'Habitation)이 '미친 사람의 집'으로 불릴 정도로 혹평을 받았던 것이 그 예다.
책은 한국의 20세기 주거문화를 별도로 다루지 않았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면 우리 주거문화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자각의 시대'에 한국에서는 오히려 고층 아파트가 전국 각지로 퍼져 나갔다. 그 아파트들은 이제 재건축을 추진하면서 부동산 시장을 들썩이게 하고 있다.
손 교수는 "이렇게 우스운 나라가 없다"면서 "엉터리로 지은 아파트, 높고 볼품도 없는 아파트를 10억, 15억 원씩 주고 산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 아파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재건축에 매달리는 현실에 대해서도 "무엇이 좋은지 모르고 20년만 지나면 돈이 된다는 생각에 다 부숴버린다"면서 안타까움을 표했다.
"우리나라 첫 고층 아파트인 여의도 시범 아파트나 전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뛰어난 건축물인 올림픽 아파트는 재건축한다고 하고, 최초의 단지형인 마포아파트는 이미 때려 부쉈죠. 1920~1930년대 건설된 독일 베를린의 서민아파트 주거단지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과 너무 비교되지 않습니까."
집합주택에 주거한 사람들의 일상까지 포착한 이 책은 근대라는 새 시대를 맞아 삶의 양상은 어떻게 변화했고, 주거는 또 어떻게 바뀌어갔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기도 하다. 저자가 직접 찍은 100장의 사진을 비롯해 다양한 집합주택의 모습을 기록한 442장의 도판을 보는 재미가 크다.
440쪽. 3만 5천원.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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