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소설 '나의 슈퍼히어로 뽑기맨' 작가 우광훈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작가 우광훈(48)은 2013년 여름 갑자기 찾아온 허리 통증에 절망했다. 20분 이상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용하다는 의사를 찾아 대구 시내를 뒤졌다. 뾰족한 치료법이 없고 그저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게 최선이라는 처방만 돌아왔다. 교사로 일하던 학교에 병가를 내고 요가매트 위에서 스트레칭을 하는 고난의 나날이 계속됐다.
남는 시간엔 딸 진서와 함께 만화 '원피스'를 읽어나갔다. 진서는 사람처럼 말하고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순록, '토니토니 초파'를 좋아했다. 어느날 딸과 함께 편의점 앞을 지나다가 뽑기기계를 운명처럼 마주쳤다. 기계 속 토니토니 초파는 세상 무엇보다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진서가 말했다. "뽑을 수 있겠어?"
뽑기에 빠진 작가는 이듬해 네이버 뽑기 카페에서 활동하는 대구지역 회원들과 처음으로 만났다. 작가의 닉네임은 난 항상 녹초닷, '초닷'이었다. 져니워킹 님, 야객뿌꾸 님, 곱들락 님, 천량성 님…수줍은 표정과 어색한 몸짓으로 인사를 나누고 대구의 인형뽑기 '3대 메카'로 꼽히는 한 쇼핑몰로 향했다. 뽑기기계 앞에 서면 허리도 아프지 않은 것 같았다. 그렇게 한 1년 정도 뽑으니 웬만한 건 다 뽑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전에 조그마한 피규어 뽑을 때가 좋았는데…그때 참 순수했었는데…"
"항상 느끼는 사실이지만 뽑고 나면…자조 섞인 웃음밖엔 남지 않습니다 (…) 뽑는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작가는 재작년 '뽀로롱~ 인형뽑기가 취미인 사람들의 모임' 카페에 이렇게 썼다. 짜릿한 손맛의 뽑기는 허리통증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진통제였지만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진중한 친구이기도 했다. 속세와 인연을 끊어야 뽑기를 그만둘 수 있을까. 하지만 기계 앞에만 서면 속수무책. 문득 뭔가 써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첫 청소년소설 '나의 슈퍼히어로 뽑기맨'은 이렇게 탄생했다.
소설에서 진서 아빠도 허리가 아파 택배회사를 그만두고 뽑기에 빠져든다. 진서의 책상은 피규어의 진열장이 되고 식탁은 소형 가전제품이 점령한다. 은둔의 고수인 영감은 '숄더 어택'이라는 비기를 전수한다. 아빠는 봉으로 밀고, 영감은 어깨로 기계를 치고…인형들이 마른 낙엽처럼 툭툭 떨어진다.
뽑기왕을 꿈꾸는 아빠 앞에 나타난 또다른 고수. 기계에서 뽑은 명품으로 치장한 사내가 말한다. "한 달간의 연습 기간을 드리겠습니다. 어때요? 받아들이시겠습니까?" 결전의 날, 목욕재계까지 하고 나선 아빠의 상대는 완구유통업계에서 일하는 뽑기 고수가 아닌 실의와 절망이었다.
"제3자 입장에서 뽑기하는 사람은 서글프고 너저분해 보이죠. 하지만 대화를 나눠보면 누구나 나름의 이유와 상처가 있어요. 아픔이 있다면 치유할 수 있는 뭔가가 필요해요. 저에게는 뽑기가 그런게 아니었나 싶어요. 뽑기가 상처를 보듬어줬어요."
1997년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며 등단한 작가는 한때 글을 그만 쓸 생각도 했다. 명성을 위해, 일종의 의무감 때문에 중언부언하는 작가가 되기 싫어서다. 뽑기는 '반드시 써야 할' 소재였다. 고통에서 시작한 뽑기가 작가로서 생명을 연장해준 셈이다. '나의 슈퍼 히어로 뽑기맨'은 제7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을 받았다. 작가의 후기다. "여러분은 나처럼 뽑기에 빠지지 마시기를. 그렇게 아프지 마시기를……(두 손 모아 빌어.)"
문학동네. 196쪽. 1만1천500원.
dad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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