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군용기 흑해서 미 구축함 주변 '위험한 비행'…순항미사일도 극비 배치
美 비판에 러 "공해서 국제법따라 비행…러에 우호적 트럼프 압박 여론전"
(서울·모스크바=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유철종 특파원 = 러시아가 정찰선과 군용기를 동원해 미국 영해와 흑해에서 잇따라 미국을 자극하고 나섰다.
러시아는 극비리에 새로운 지상 발사 순항미사일도 배치하는 등 최근 백악관 안보사령관의 낙마로 이어진 '러시아 스캔들'로 곤혹스러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對) 러시아 정책을 시험대에 올려놓았다.
14일(현지시간) 미국 국방부는 복수의 러시아 군용기가 지난 10일 흑해를 순찰하는 미 해군 구축함 주위를 근접비행했다고 밝혔다.
이는 미 매체 워싱턴프리비컨의 보도로 처음 알려진 것으로, 미 당국자는 "위험하고 전문가답지 못한" 사건이라고 표현했다.
데이비드 퍼거드 미 유럽사령부 대변인에 따르면 당시 동원된 러시아 군용기는 전폭기 수호이(Su)-24와 대잠초계기 일류신(IL)-38로, 모두 세 차례에 걸쳐 미 구축함 포터함에 접근했다.
퍼거드 대변인은 워싱턴포스트(WP)에 "러시아 군용기들이 무선에 응답하지 않았다"며 "잘못된 의사소통이 사고나 판단 착오로 이어질 수 있어 매우 우려할 만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미국의 이같은 비난을 즉각 반박하고 나섰다.
국방부 대변인 이고리 코나셴코프는 "우리 군용기들의 흑해 비행은 공해상에서 국제법과 안전 규칙에 따라 이루어져 왔고 이루어지고 있다"면서 "미 국방부 발표대로 미 구축함이 자국 해안에서 수만 마일 떨어진 러시아 인근 해역에서 '통상적인' 운항을 했다면 우리 군용기들의 못지않게 통상적인 비행에 놀라는 것이 이상하다"고 꼬집었다.
지난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병합 이후 흑해 인근에서 러 군용기와 미 군함의 충돌 위기가 몇 차례 있었으나, 트럼프 취임 이후에는 이번이 처음이다.
러시아는 미국 앞바다에서도 미 해군을 도발했다.
폭스뉴스가 미군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이날 오전 러시아 정찰선 한 척이 미국 델라웨어 주 연안에서 약 113㎞ 떨어진 대서양 해상에서 시속 18.52㎞(10노트)의 속도로 북진하는 모습이 미군에 포착됐다.
해당 정찰선은 러시아 해군의 정보 수집함인 '빅토르 레오노프 SSV-175'로 미국 영해 근처에서 포착된 것은 지난 2015년 4월이 마지막이었다.
지대공 미사일을 장착한 이 정찰선은 통신 도·감청은 물론 미국 해군의 음파 탐지 시스템도 측정할 수 있다고 폭스뉴스는 설명했다.
이러한 가운데 러시아가 최근 극비리에 자국 내에 새로운 순항미사일을 배치한 사실도 알려졌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번에 새로 배치된 것으로 확인된 SSC-8 미사일로, 제원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러시아는 앞서 지난해 말에도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이스칸데르 미사일을 실전 배치한 것이 포착되기도 했다.
미국은 러시아의 이같은 미사일 배치가 1987년 양국간에 체결된 '중거리핵무기 폐기협정'(IRNFT) 위반이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당시 협정은 사거리 500㎞∼5천500㎞의 탄도·순항미사일의 생산과 실험, 배치를 금지한 것으로, 냉전 시대 군비 경쟁을 종식한 역사적 협정으로 꼽힌다.
존 매케인(공화·애리조나) 상원 군사위원장은 "러시아가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지상 순항미사일을 배치한 것은 IRNFT의 위반이며, 유럽 내 미군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에 큰 군사적 위협"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IRNFT를 위반했다는 비판도 트럼프 정부를 압박하려는 여론전이라고 지적했다.
러시아 상원 국제문제위원회 위원장 콘스탄틴 코사체프는 "언론에 대한 정보 유출은 러시아와 대러 관계를 정상화하려는 미국 새 행정부에 반대하는 세력의 통상적 정보전의 일환"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이 같은 정보전을 기획한 사람들은 정치인들과 사회여론을 (실체가 없는) 신화적인 외적 위협(러시아의 위협)의 지속적 공포 속에 묶어둘 필요가 있다고 믿고 있다"면서 "이러한 시도의 목적은 트럼프 대통령이 단극체제를 구축하려던 미국의 대서양 정책을 수정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의 잇단 '군사도발'은 안 그래도 러시아와 엮여 골머리를 앓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를 더욱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러시아에 대한 유화적인 태도로 친러 논란을 불러왔고, 미국 내 대표적인 친러 인사인 렉스 틸러슨을 외교수장으로 앉히며 논란을 키웠다.
러시아의 대선 개입 의혹도 계속 가시지 않는 상황에서 급기야 마이클 플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이 주미 러시아 대사와 대러 제재를 논의한 사실이 폭로되며 취임 한 달도 안 돼 낙마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온 러시아의 군사 도발은 정권 초기 트럼프 대통령의 대러 정책을 떠보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매케인 의원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트럼프를 시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 CBS뉴스도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냉전 복귀의 신호"라고 표현하면서 "러시아의 도발이 트럼프가 미-러 관계 개선을 위해 얼마나 노력할지를 시험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 도발에 이은 적대국의 잇단 '떠보기'로 외교·안보 정책에서 혹독한 첫 시험을 치르게 됐다.
mihy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