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암살은 치명적이고 대담하다.
스파이, 첩보 드라마(영화)의 핵심에 암살이 놓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최근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를 통해 '연기의 신'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는 한석규도 암살을 당한 적이 있다. 2002년 영화 '이중간첩'에서다.
한석규는 이 영화에서 북한의 남파 위장 간첩을 연기했다. (그러고 보니 10년 만에 안방극장 복귀를 앞둔 고소영이 당시 고정간첩을 맡아 한석규와 짝을 이뤘다)
비릿한 조폭 영화를 제외하고, 총기를 규제하는 대한민국 콘텐츠에서 암살을 다루는 경우는 북한을 다루거나 일제시대 독립투사들의 활약상을 그릴 때다.
최근 인어로 변신했던 전지현은 암살의 가해자와 피해자를 잇달아 연기했다. 북한 외교관으로 출연한 영화 '베를린'에서는 같은 북한 측 요원들에게 암살당했고, 일제 독립투사를 연기한 '암살'에서는 저격수로서 많은 적의 목숨을 끊었다.
일반인들에게 암살은 이처럼 영화에서나 일어나는 일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영화는 언제나 현실보다 몇 걸음 늦기 마련이다.
밤사이 '북한 김정남 피살'로 떠들썩했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이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46)이 지난 13일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됐다. 사건이 여러모로 극적이다. 사람 많은 공항 한복판에서 두명의 여성이 그의 얼굴에 독극성 물질을 뿌리고 달아났다.
영화 '이중간첩'의 한석규나 '베를린'의 전지현 모두 북한 사람인데, 북한측에 당했다. 작년 한류를 다시 불타오르게 한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도 북한 내 권력다툼과 비리로, 타국인 일본에서 북한군이 북한군을 암살하는 작전이 펼쳐졌다.
김정남을 암살한 자들이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고 하니 현실이 영화와 드라마를 압도한다.
김정남의 어머니이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처 성혜림의 조카인 이한영은 1997년 2월15일 분당의 한 아파트에서 남파 간첩의 권총에 맞아 열흘 만에 숨졌다. 이 사건은 2010년 영화 '의형제'의 모티브가 됐다. 강동원이 남파 간첩을 연기했다. 강산이 한번 바뀌고 난 뒤에야 이야기로 '활용'된 것이다.
한동안 인어와 도깨비, 저승사자에게 홀렸다가 밤사이 '실제상황'으로 펼쳐진 암살사건에 정신이 번쩍 든 사람들이 많겠다.
'007'이나 '킹스맨' 같은 허황한 이야기도 아니고, 조금만 차로 달려가면 마주하는 북한과 관련한 암살이 버젓이 백주에 벌어졌다. IS 테러가 아닌 다음에야, 천하의 '제이슨 본'도 이렇게 뻥 뚫린 곳에서는 못할 짓이다.
이 명징한 현실 앞에 웬만한 이야기는 명함도 못 내밀겠다. 역시 현실은 얼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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