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집권 후 이복형인 김정남을 암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국가정보원은 15일 국회 정보위원회 간담회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2011년 12월) 이후 김정남 암살 시도가 계속 있었고 김정남이 김정은에게 살려달라는 편지를 보낸 적이 있다고 보고했다. 이병호 국정원장은 "김정남 암살은 김정은 집권 이후 '스탠딩 오더'(취소할 때까지 계속 유효한 주문)였다"며 "2012년 본격적인 시도가 한번 있었고, 같은 해 4월 김정남은 김정은에게 '저와 제 가족을 살려달라'는 서신을 발송한 바 있다"고 말했다고 정보위원들이 전했다. 이 원장은 "오랜 노력의 결과 실행된 것이지 암살의 타이밍은 특별한 의미가 없다"고 보고했다. 김정남 피살 하루 전인 12일 북한이 신형 중거리미사일을 시험발사한 것과는 관련이 없다는 얘기다. 정찰총국을 비롯한 북한 정보당국이 계속 김정남 암살 기회를 노리다 이번에 실행했다는 게 국정원의 판단이다.
김정남이 살해될 당시 상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우리 정보당국과 말레이시아 언론 등에 따르면 이달 6일부터 말레이시아에 머물던 김정남은 13일 오전 9시께 마카오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쿠알라룸푸르공항 출국장에서 기다리다 아시아계 젊은 여성 2명에게 공격을 당했다. 이들 여성은 김정남의 뒤를 낚아챈 뒤 얼굴에 치명적인 독극물로 추정되는 액체를 뿌렸다. 치명적인 독성 물질이 사용됐다는 점에서 용의자들은 고도로 훈련된 요인일 가능성이 크고, 이 때문에 북한 공작원이라는 추정이 나온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택시를 타고 도주했다는 용의자들을 추적하고 있으나 이들의 신원을 확인할 결정적 단서는 아직 없다고 한다. 말레이시아 당국은 김정남의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 위해 이날 부검을 했고, 현지 북한 대사관 직원들이 부검을 참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이날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주재로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개최하는 등 긴박하게 움직였다. 황 권한대행은 "정부는 이번 사건이 심히 중대하다는 인식하에 북한의 동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남의 후견인 역할을 해온 것으로 알려진 중국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 사건과 관련해 민감한 내용을 다룬 보도가 이날 삭제하거나 차단됐다. 북중 접경지역에 중국군 1천 명이 증파됐다는 홍콩 언론의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국정원은 이날 정보위 간담회에서 김정남의 가족이 중국 당국의 보호를 받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향후 북중 관계의 변화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중국 당국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긴밀하게 소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북한 측이 김정남의 시신 인도를 요구한다는 소식은 있으나 이번 사건의 배후와 관련한 북한 공식 매체의 반응은 이틀째 없다. 지금까지 드러난 여러 정황으로 볼 때 갈수록 북한 소행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높은 듯하다. 권력 유지를 위해선 어떤 무모한 짓도 할 수 있는 김정은과 마주하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더욱이 이런 김정은의 손에 핵과 미사일이 들려 있다. 안보 불감증을 경계하고 모든 가능성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정부는 김정남 피살 이후 안보 상황 관리에 한 치의 빈틈도 보여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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