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연간 가계부채 증가액이 지난해 다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정부가 1년 전 은행의 가계대출 긴축 정책을 시행했지만 가계 빚은 계속 빠르게 늘어난 것이다. 한국은행은 15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작년 12월 말 가계대출 잔액이 1천154조6천억 원으로 1년 간 124조 원 늘었다"며 "연간 증가액이 사상 최대였던 2015년의 110조1천억 원보다 더 확대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 집계에서 빠진 대부업체나 자산유동화회사 대출, 신용카드나 할부금융 판매 등을 포함시키면 가계부채 증가 폭은 약 13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금융권별로 은행은 2015년 78조2천억원이던 증가액이 68조8천억 원으로 12.0% 줄었다. 그러나 상호저축은행, 신용협동조합 등 비은행권은 31조9천억원에서 55조1천억 원으로 증가 폭이 72.7% 늘어났다. 당국이 은행권 대출을 조이자 대출 수요가 제2금융권으로 이동하는 '풍선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제2금융권 대출은 은행보다 이자가 훨씬 비싸다. 작년 12월 은행의 가계대출 금리(신규 취급액 기준)는 연 3.29%인데 비해 상호저축은행은 연 14.7%에 달했다. 결국 가계부채 증가를 억제하려던 정부 정책이 대출자의 이자 부담만 늘린 셈이 됐다. 은행들은 정부 방침에 따라 작년 2월 새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도입했다. 주택담보 대출의 여신심사를 담보 위주에서 소득 중심으로 바꾸고 원리금을 거치기간 없이 처음부터 나눠 갚도록 하는 내용이었다. 도입 초기에는 이 가이드라인을 수도권에만 적용했으나 3개월 뒤 전국으로 확대했다. 금융당국은 2015년 7월 '가계부채 관리방안'을 발표하면서 이 가이드라인의 개요를 공개했는데 제2금융권은 당시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러다가 지난해 가이드라인이 시행되면서 제2금융권으로 대출수요가 이동하자 7월부터 보험업계에도 적용되기 시작했다. 내달부터는 상호금융권까지 확대될 예정이다.
가계부채는 우리 경제의 '시한폭탄'에 비유된다. 잘못 건드리면 위험하고 그냥 놔둬도 언젠가 폭발할 수 있다. 그런데 지난해 여신규제 가이드라인이 적용되는 과정을 보면 뭔가 석연치 않다. 무엇보다 금융당국이 제2금융권으로 대출이 옮겨갈 것을 예측하지 못했는지 궁금하다. 2015년 가계부채 관리방안이 발표될 때부터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런 현상을 걱정하는 관측이 무성했다. 가계부채는 최근 5년 동안 400조 원 늘었다. 한국은행 가계신용 통계로는 작년 9월 말 현재 1천300조 원에 육박한다. 정부가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대출 규제를 너무 느슨하게 운용한 탓이 크다. 정부는 이런 정책 오류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이미 시행 중인 가계부채 관리방안도 꼼꼼히 다시 들여다보고 고칠 데가 있으면 신속히 보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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