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멈추어라! 그대 교활한 자들이여, 노력을 모르는 자들이여, 남의 두뇌를 날치기하는 자들이여! 감히 내 작품에 그 흉악한 손을 대려는 생각은 하지도 말지어다."
이 문구를 쓴 사람은 독일 르네상스 시대에 화가이자 판화가로 이름을 날렸던 알브레히트 뒤러(1471~1528)다. 당시 유럽에서는 뒤러의 작품을 흉내 낸 위작이 넘쳐났다. 뒤러는 위조꾼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미술품 지적 재산권을 둘러싼 첫 소송이었다.
이 사건은 미국의 미술사학자 노아 차니가 쓴 '위작의 기술'(학고재 펴냄) 첫 장을 장식하는 미술품 위조 사례다. 미술범죄연구협회 설립자인 저자는 문화와 예술이 꽃피었던 르네상스 시대부터 현대까지 미술품 위조 사례를 분석했다. 이를 통해 위조꾼들이 대담한 행각을 벌인 배경은 무엇인지 설명한다.
책은 위조의 이유가 금전 때문일 것이라는 막연한 인식을 배반한다. 오히려 자신의 천재성을 시험하고 싶은 과시욕에서, 혹은 그 천재성을 인정하지 않는 기성 미술계에 대한 복수심에서 위조에 빠져든 위조꾼들이 더 많았다는 것이다.
그 중에는 누구나 아는 거장도 있다. 시스티나 대성당 '천지창조' 벽화와 조각상 '다비드', '피에타' 등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1475~1564)는 젊은 시절 대리석 조각상을 고대 유물처럼 꾸며 팔았다. 네덜란드 화가 한 반 메헤렌(1899~1947)은 회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등으로 유명한 요하네스 페르메이르(1632~1675)의 화풍을 흉내 낸 그림을 진작으로 속여 판매함으로써 자신의 작품을 알아주지 않는 미술계를 골탕먹이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다 독일 나치 정권의 이인자 괴링에게 판매한 위작 '간음한 여인과 그리스도' 때문에 법정에 서기도 했다.
출처까지 날조하는 중개상, 위작을 진품과 바꿔치기하는 조직범죄 집단 등과 손잡고 오랫동안 위조에 몸담은 위조꾼들의 이야기도 책에 실렸다.
위조는 감정과 떼놓을 수 없다. 책은 작가와 소유주, 중개인, 전문가, 나아가 한 국가의 자존심이 진위 확인을 어렵게 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장 폴 게티 미술관은 라파엘로를 비롯한 유명 화가들의 드로잉이 위작일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고 결국 위작이라고 주장하는 큐레이터와 소송전까지 벌였다.
저자는 미술품 위조가 원작자의 명성을 흠집 내며, 학계를 오염시키며, 역사까지 바꾸는 범죄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와 함께 법의 처벌을 받고도 반성하기는커녕 더 화려한 경력을 쌓아가는 위조꾼들, 미술품 위조 범죄에는 유독 관대한 대중, 위조꾼의 이야기에 매혹당하는 언론 등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다.
고(故) 천경자와 이우환 등 최근 우리 사회를 뒤숭숭하게 했던 문화예술인들의 위작 논란과 연결지어 음미할만한 대목이 많다.
오숙은 옮김. 352쪽. 2만2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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