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츠키, 스탈린에 권력 빼앗긴 후 집요한 암살공작에 당해
김정은, 스탈린식 공포통치 부할?
(서울=연합뉴스) 유영준 기자 = "매일 아침 일어나면 목이 제대로 붙어있는지 만져보곤 했다."
스탈린 사후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 오른 니키타 흐루쇼프는 스탈린 치하에서 자신이 겪은 공포 분위기를 이렇게 술회했다.
스탈린의 사망 직전 의식불명의 스탈린 곁에 모인 당시 정치국원들은 오히려 그를 살리려는 의사의 출입을 막았다고 한다.
스탈린 집권 시절 소련 권력 구조의 정점인 정치국원들이었지만 언제 스탈린의 눈 밖에 나 숙청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당시 극한적 상황을 보여주는 일화들이다.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 대상을 가리지 않고 정적을 처단했던 스탈린의 공포정치. 그런데 스탈린이 사라진 지 60여 년이 지난 지금 스탈린의 망령이 다시금 부활한 것일까.
스탈린은 둘째 부인이 자신을 비난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하자 부인의 가족, 곧 처가 일원을 모두 수용소 유형 등에 처한다. 첫 부인의 아들은 그의 홀대에 자살을 시도했으나 탄환이 빗나가 살아남았다. 스탈린은 다행스러워하는 대신 아들에 대해 자신 하나도 제대로 맞히지 못했다고 힐난했다.
북한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의 피살은 아직 배후가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그가 집권 후 보여온 공포정치와 함께 여러 면에서 스탈린의 망령을 되살리게 한다.
독재자들의 공통분모인지 모르지만 편집광적인 그의 무자비한 통치 수법은 스탈린의 그것과 흡사한 인상을 준다.
스탈린을 제외한 권력 최상층부 어느 누구도 안심할 수 없는 불안한 상황, 자신에 반대하거나 위협이 되면 가족 등 친지들도 가차 없이 처단하는 비인간성 등이 당시 상황과 유사하다.
권력 세습을 통해 지도자에 오른 김정은은 러시아 혁명 과정에서 투쟁을 거친 스탈린과 정치역정 면에서 비교가 안 되지만 통치의 잔혹성 면에서는 스탈린에 비견할 만하다.
2인자로 알려진 황병서가 그 앞에서 손으로 입을 가리고 말하는 모습은 스탈린 왕조 시대 못지않은 절대 군주의 모습 그대로이다.
아마 스탈린 시대 수법을 배운 조부 김일성과 부친 김정일의 잔혹한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일까.
정적이나 반대자의 처단 면에서 김정은이 다소 즉흥적이라면 스탈린은 조직적이다. 1930년 후반 벌어진 이른바 대숙청은 스탈린이 반대세력이나 잠재적 경쟁자들을 치밀한 계획을 통해 처단한 것이다.
레닌 사후 권력 승계 과정에서 그의 승계를 도왔던 레프 카메네프, 그리고리 지노비에프 등 핵심 정치국원들과 혁명의 공신인 러시아 적군의 고위간부들도 대다수가 숙청됐다.
심지어 그의 측근으로 유력한 후계자로 꼽혔던 세르게이 키로프 당시 레닌그라드 당서기도 의문의 피살을 당했다. 스탈린의 지시를 받은 비밀경찰(NKVD) 요원 소행으로 드러났다.
그가 벌인 숱한 정적 제거 가운데 멕시코에 망명 중이던 혁명동지 레온 트로츠키의 암살은 김정남의 피살과 흡사한 측면이 많다.
지지자들로부터 '예수 이래 가장 위대한 유대인'으로 칭송받았던 트로츠키는 탁월한 공산주의 이론가로 러시아 혁명에서 핵심 역할을 맡았으나 현실 정치에는 약했다. 그리고 치밀한 당내 준비공작을 벌인 스탈린에게 권력을 빼앗긴 후 망명길에 올랐다.
1924년 공산당 적을 박탈당한 후 1927년 터키를 시작으로 프랑스, 노르웨이를 거쳐 1939년 마지막 거주지인 멕시코에 정착했다. 그는 해외 망명 중 스탈린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혁명의 배반'이라는 책을 통해서 스탈린의 소련이 사회주의를 배반하고 전체주의국가로 변했다고 비난했다.
트로츠키는 자신에 호의적인 멕시코 정부의 배려로 엄중한 신변경호를 받았으나 결국에는 스탈린의 집요한 암살 공작을 피하지 못했다.
1940년 5월 자택을 습격한 무장괴한의 총격을 모면했으나 8월 트로츠키 추종자로 변신한 소련측 공작원에 피살됐다.
스탈린의 소련은 트로츠키 암살을 위해 여성요원을 그의 비서로 침투시키는 데 성공하고 이어 비서의 남자친구라는 명목으로 암살범을 트로츠키 측근으로 주변에 심는 데 성공했다. 트로츠키를 살해한 범인은 소련 정부 요원이 아닌 스페인 공산당원 출신이었다.
오랜 기간 치밀한 계획과 집요함. 그리고 외국인을 동원하는 국제적 네트워크.
김정남의 피살 과정에서 드러난 치밀한 사전 계획과 이른바 '스탠딩 오더'(취소할 때까지 계속 유효한 주문)라는 집요함에서 유사성이 드러난다. 다국적 용의자들의 면모도 유사하다.
김정남도 불안 속에 떨며 중국과 마카오,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지를 돌아다닌 끝에 비극적 종말을 맞았다. 한편으로 김정일의 세습 정권에 비판적 입장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영향력이 강한 말레이시아를 찾을 경우 항상 경호원이 대동했다고 하나 암살자들은 순간적인 방심을 놓치지 않았다.
트로츠키를 노린 스탈린의 요원들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던 것처럼 김정남도 집요한 암살범들의 손바닥 안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70여 년 전 독재자들의 정적 제거 수법이 아직 유효하다는 현실, 스탈린의 유산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yj378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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